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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탈북자'여서 감사합니다


‘탈북자’ 꼬리표에 힘든 시간을 견디고 나니 ‘탈북자’가 명함이 되었다.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이겨낸 건지, 견뎌낸 건지, 그 긴 시간을 감내하고 나니 더 이상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알맹이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바꾼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가난, 탈북, 불법체류자, 탈북자... 그동안 감추고 부정하고 버리고 싶어 울었던 숱한 눈물이 말라 소금이 되는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나니 나만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 나는 남한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한 북한사회와 체제를 20년 이상 경험했다.

● 중국 사회와 문화를 경험했고 중국어를 할 수 있다.

● 탈북자를 알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 생존능력이 뛰어나고 새로운 환경이 두렵지 않다.   


내가 가진 장점을 깨닫고 나니 진심으로 이런 기도가 나왔다.

“제가 탈북자여서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탈북민을 위해 제작되는 잡지에 기사(인터뷰, 기사, 사진)쓰는 일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려면 직업 특성상 반드시 신분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저는(도) 탈북자입니다.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상대에게 나를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답을 한다.  

“어머, 탈북자예요? 전혀 몰랐어요. 진짜예요? 모르겠던데...”

그때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여 ‘감사합니다.’로 말하곤 한다.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탈북자인 줄 몰라줘서 감사한가?’ 스스로 반문하고 씁쓸해질 때가 있다.


* 아직도 많은 탈북자들이 신분(탈북자)을 들키지 않으려고 서울말을 배우고 고향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간다. ‘탈북자’라는 말속에 차별, 편견, 불합리함,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하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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