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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Feb 12. 2023

3. 나는 절실한가? 운동이 답이다.

50대 후반 아저씨의 운동기록, 서론도 길고, 글도 길고...

나에게는 스쿼트 50개는 불가능 그 자체였다.


언젠가 내가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였다. 생각지 않았다는 말은 전혀 준비가 되지도 않았고, 그렇게 될 것이란 생각을 1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기보다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인데, 당시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라는 심정이었다. -> 오해가 있을까 싶어..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란 표현은 좀 지나쳤다. 당시의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이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신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배부른 소리 일 수 있다. 조심스럽게 당시의 심정만을 표현했다.


얼마 후, 주말에 우리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때는 내가 멕시코에서 우리나라로 복귀해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금은 다시 멕시코에 와 있다.) 당시에 아이들과 같이 본 영화가 '극한직업'이었다. 간만에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었다. 아이들 딴에는 그렇지 않아도 마르신 우리 아버지께서 실의에 빠져 있던 모습에 안쓰러웠는지, 영화도 보고, 밥도 사고 - 아직은 내가 지들보다 더 버는데... - 등등으로 나를 끌고 다녔다. 자슥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막내아들이 "아빠, 언젠간 일어날 일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게 단지 좀 생각지 않게 당겨서 일어난 것뿐일 수도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 막내아들은 아빠에게 힘내라고 이야길 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인데, 나에겐 사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


부모님을 뵈러 갔다. 당시에 나는 무릎에 통증이 있었던 상태였다. 마른 몸에 통증이 있어서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아내도 그렇고 부모님, 심지어는 고모님까지도 걱정들을 많이 해 주셨다. 한의사 분한테 진료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의 심적 상황으로) 몸 전체가 긴장되어 있다고 하시면서 긴장을 풀어주는 한약을 추천하시기도 하고 해서 한약을 복용하기도 하였다. 아버님께서는 당시에 연세가 80이 넘으셨는데, 건강함을 유지하고 계셨다. 그때 아버님은 앉았다 일어섰다를 매일 50개 이상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릎에 통증이 있었던 나에게는 스쿼트 50개는 불가능 그 자체였다.


"절실함." 이는 내가 성공한 모든 경우의 수에서 가지고 있었다.


역시나 가족이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나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이었다. 가족들의 이어진 격려나 위로, 걱정은 나를 일어나게 하였다. 계획을 잡기 시작하였다. 설사 약간의 희생(경제적, 시간적)이 따르더라도 미래를 그려가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나를 분석한 것이었다. 내가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성공한 것과 실패한 것을 분류했고, 성공한 것은 왜 성공했는지, 실패한 것은 왜 실패했는지를 장기간에 걸쳐서 분석했다. 단순하게 그때는 사춘기여서 뭘 못했다가 아니고, 사춘기였는데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에 빠져 있어서 다른 무엇을 못했고, 그게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식으로 분석을 했다.


경우의 수도 많이 가져갔다. 심지어는 월 판매 목표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왜 그때는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왜 그때는 판매 목표를 달성했는지도 분석했다. 실패의 원인은 분명했다. 이상하게도 실패를 분석하다 보면 원인이 분명하다. 그런데 경우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성공을 분석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패할 때 보다도 성공할 때가 실제 주변 상황은 더 좋지 않았던 것이다. 주변 상황으로만 보면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때가 성공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 점은 참 의아 했다.


실패의 원인을 제거하고, 성공의 요인을 강화시키면 된다.


성공만을 따로 놓고 생각을 해보았다. 분명 주변 상황으로만 보고, 숫자적 통계로 보고 해 봐도 성공의 확률은 실패의 경우보다 적었다. 그럼에도 나는 성공했다. 분명 실패했어야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마침내 공통점을 찾았다. "절실함." 이는 내가 성공한 모든 경우의 수에서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절실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바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월 판매 목표도 그렇다. 월 초부터 목표를 달성하고자 절실함을 가지고 있었던 달에는 나는 시황, 재고 등등에 상관없이 우리 부서의 판매 목표를 달성했었다. (판매 목표만 보면 실패보다 성공의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나는 판매 목표 달성에는 언제나 절실함을 담았던 것이다. 집착에 가까울 만큼.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나는 절실한가?' 그러면서 나온 결론 중 하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절실함'을 가져오는 게 실은 꽤나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있어서 '절실함'은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성공비결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절실함'만을 가져오면 되는데, 그게 안된다. 나는 수도 없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절실한가?' 나는 이에 대한 대답을 '절실하다.'라고 자신 있게 답 할 수가 없었다.


운동을 시작하였다.


다시 실패 원인들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보다 보니 내가 평생을 거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 내가 대한민국 평균 체중을 갖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해마다 있었던 건강검진을 받으면 언제나 체중미달 외에는 이상이 없었다. 건강검진을 받은 후에 의사 선생님 면담이 되면, 최근 3년간 체중에 급격한 변화가 있는지 물으셨다. 그리고 급격한 변화가 없다면 체중미달이라 하더라도 크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셨다. 그래도 나는 체중 증가가 되기를 원했으나, 이는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온갖 지*을 다 하더라도 그건 안 되는 거다.


성공의 공통점인 '절실함'을 찾는 것과 내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영역에 들어서는 일을 나는 당시의 목표로 다시 설정하였다. 다소 허황될지라도 아내 말대로 전에 가졌던 눈빛을 다시 찾고, 뭔가 활기찬 삶의 동력이 필요했다. 먹어도 안되고, 일정기간 운동을 해도 안되었고, 영양제를 먹어도 안 되는 이런 상황에서 나이도 만만치 않다. 회사생활 하면서 술도 많이 마셨고 (지금은 안 마심.), 회식자리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그렇게나 먹어대는데도 안되었던 일을 지금에서야 하자고 덤빈 것이다. '절실함'을 찾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하였다. 운동의 시작은 푸시업이었다.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건희 회장님의 혁신 관련 책자에서 나온 푸시업에 대한 기억으로 푸시업으로 시작하였다. 푸시업이 100개(50x2) 정도로 늘어나니, 운동에 욕심이 생긴다. 아령을 사 오고, 아이들도 아빠가 매일 운동을 하니, 아빠 주고, 본인들도 운동한다고 운동기구를 이것저것 사 오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사 온 운동기구들을 정작 사온 본인들은 활용도가 떨어지고, 나의 운동량은 늘어 갔다. 참 이상했다. '절실함'이 생기기 시작한다. 실은 상황은 전보다 나아지고 있었는데, 아니 나아진다기보다는 익숙해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지만, '절실함'은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젊은 날의 무모함이 걷힌 나의 나이대에서의 '절실함.'은 또 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젊은 날의 무모함은 당연하다. 그게 젊음의 멋이다. 반면 내 나이의 무모함이 걷힌 '절실함.' 또한 다른 의미를 갖게 한다.


미래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수동적 미래의 그림에서 능동적 미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운동을 하면서 나에 대한 믿음, 즉 자신감이 싹 터 오르고 있었다. 그런 자신감은 몸이 좋아진다(겉모습의 변화는 나에겐 어렵다. 여전히)라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매일 뭔가를 하고 있구나라는 나에 대한 신뢰와 운동 자체가 주는 개운함 같은 것이 같이 엮어져 있어서 그렇다고 스스로는 결론 내렸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운동량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푸시업을 하고, 아령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하고 하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 넘어간다. 10분 푸시업 몇 개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 우습다. 그럼에도 아직은 겁이 나서 다리 운동은 하지 않는다. 무릎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겁이 난다. 그러다 날씨가 풀리고, 저녁시간에 아내와 같이 인근 산책로를 걷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산책로는 정말이지 너무나 잘되어 있었다. 게다가 어두워져서 나감에도 불구하고 전혀 안전에 대한 걱정이 되질 않는 이런 나라는 세계 어디를 가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는 산책로는 왕복 7Km였는데 무릎 통증으로 겁이 많았던 나는 3Km 이상 걷기가 무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반 걷고, 반은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스트레칭과 상체 운동을 하고 하는 일상을 만들었다. 참 인간의 몸은 신기하고 희한하다. 그렇게 한 몇 달 지나니 무릎 통증이 사라진다. 이젠 3Km가 아니라 속보로 왕복 7Km를 걸어도 거뜬하다. 1개의 스쿼트도 겁이 났던 내가 지금은 한 세트로 100개도 거뜬하다.


나는 이제 움직이고 싶다. 절실하게.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기 시작하였다. '나는 절실한가?' 이제는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 힘이 생기니 동력이 생기고, 그 동력이 넘쳐나니 나는 이제 움직이고 싶다. 절실하게.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몸의 외관이 변하지는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 뭐, 그렇다고 포기도 아니다. 포기도 아니고,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인정해야 한다. 나의 나이에 그렇게나 많은 세월을 같이 했던 몸의 외적 모습을 바꾸겠다는 건 욕심이다. 그렇게 핑계를 대고 싶다. 그렇더라도, 내적 힘이던 외적 힘이던 심적 힘이던, 나는 운동을 통해서 '힘'이 생겼다. 나는 나의 미래를 다시 그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잘하고, 내가 성공했던 경험을 보고, 실패의 원인을 제거한 나의 미래를 그려 가기 시작하였다.


멕시코로 다시 가자고 결심하였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멕시코로 다시 가겠다고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 이제 저희들이 취업도 했고, 상황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왜 멕시코로 가려하세요?'라고 한다. 아이들의 말인즉, 아빠가 어떤 어려운 상황으로 가는 것이라면, 본인들이 그 어려움을 상쇄할 수 있으니, 그렇게 가서 고생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슥들... 말이라도 고맙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황 때문은 아니다. 상황이라고 했다면 우리나라에서 아이들과 같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멕시코로 다시 왔다. '힘'이 생겼으니, 그 '힘'을 소진해 보고 싶다. 그리고, 멕시칸 친구들도 보고 싶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멕시코로 왔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 이제 시작이다.


매일을 체육관엘 간다. 멕시코에서 숙소를 구하고, 임대를 하고 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선순위는 단지 내 체육관의 유무였다. 집에서만 운동을 해 왔기에, 기구들이 완비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보고 싶기도 하였다. 푸시업이야 매일 하는 것이고, 기구 운동을 곁들이니 힘이 더 들어간다. 처음에는 안 쓰던 근육을 쓰니 몸이 쑤신다. 밤에 몸 곳곳이 아파서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아침에 몸이 뻐근한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운동을 했다는 그 뿌듯함이 자리를 차지한 이유였다.


체육관엘 가면 유튜브나 영화의 체육관에서 보듯이 그렇게 근육이 빵빵하고 거대한 사람들이 체육관에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몸 좋은 멕시칸 아저씨들이 같이 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에서 깡마른 내가 운동을 하다 보면 제삼자가 보면 웃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는 멕시코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던 본인에게 피해가 없다고 하면 거의 방관 수준이다. 그리고, 인사도 잘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다 보면 체육관 파트너라고 하면서 인사를 한다. 운동할 때는 인사만 하고, 운동 중에는 서로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젠 거의 달관 수준이다. 운동 자체가 재미있고, 의미 있고, 자신감을 쌓아준다. 그러니 다른 걸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운동을 지속하다가 보니까 운동 중에 아이디어가 샘솟는 경우가 많다. 때론 허황된 아이디어인데도 운동 중에는 마치 그렇게 하면 다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이 아이디어를 내일 꼭 해봐야지 하는 것들이 많은데, 운동 중 아이디어가 다음날 실행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결국 운동을 하는 중에는 과도한 자신감이 생긴다는 말인데, 운동 중에 생긴 배짱이 실제로 연결되기는 어려움에도 이게 싫지 않다. 그러다 보면 그런 자신감에 걸맞은 현실을 만들어 갈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나는 절실한가?' '운동이 답이다.'


** 제가 글을 쓰면서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너무 긍정의 측면으로 치우친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려운 상황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려움의 상황을 실감 나게 표현하지 못하는 필력의 부족일 수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수십 년의 회사생활이 긍정적인 상황만 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IMF때 저는 대리 직급이었습니다. 그걸 보는 관점에서 보면 '고생 많았겠다.'라 할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그래도 월급 꼬박 받았잖아.'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예로 드는 경우들이 더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에게는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스스로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도 있고, 어려움의 차이는 있겠지만, 극복해 가는 과정의 선순환을 만들어 가시는 분들에게 아주 조금의 실마리라도 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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