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직면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은 모두 다릅니다. 누구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견딜만한 시간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에 따라 우리 앞에 다가올 미래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오늘의 비루함이나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 살다간 이들의 지혜에서 배울 수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마음가짐의 다양한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현실을 견디는 방법에는 첫째 하향비교가 있습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지금의 내 자신을 위로하는 가장 고전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을 통해 현실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보다 낫지 않은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동병상련의 마음입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구나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리는 것도 그 사람과 동병상련의 마음이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내 가까운 곳에 있다면 힘든 이 세상 조금은 견디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는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희망을 품는 일입니다.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니 지금의 고통이 시작이고 진행 중이라면 끝날 때까지의 시간도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진리이니 믿어도 좋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 앞에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우리는 충분히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현실에서 조금 멀어지는 것입니다. 현실 보다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지금을 견디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소야 김천희 선생은 ‘술타령’이라는 시에서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사먹지”라고 했는데 아마도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을 잘 나타낸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은 이곳에 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저 너머에 있다는 것, 이 역시 지금의 비루함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즐거움을 찾는 것입니다. 웃을 수 없는 현실일지라도 그 와중에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는 일, 그것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 사람이 찾은 즐거움은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므로 소중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봉사로, 어떤 이는 예술로, 어떤 이는 운동으로, 어떤 이는 이웃과 함께 하는 것으로 개인의 취향에 따른 즐거움을 찾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현실을 넘어서는 일이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며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부모에겐 자식이, 예술가에겐 작품이 될 수 있겠지요. 그것은 막막한 현실을 견딜 수 있게, 어쩌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