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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152. 평화를 위한  기도

‘전쟁’과 ‘평화’를 설명한 말 중에서 지금도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은 아버지가 자식을 묻는 것이고, ‘평화’는 자식이 아버지를 묻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 자식, 남의 자식 할 것 없이, 청년이고, 어린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이 주는 참혹함입니다. 반면 수명을 다한 뒤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자식이 아버지를 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평화라는 뜻이지요.     

남북 정상들의 훈훈한 모습을 본 시민들의 반응 중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내가 죽기 전에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라는 놀라움에 가까운 탄성입니다.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순간, 도저히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이 거짓말처럼 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며 두 눈을 의심한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꿈에 장자가 나비가 되었다는 ‘호접몽 胡蝶夢’처럼 잠을 깨고 나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거짓말 같은 일들도 참 많이 일어나지만 우리에게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은 너무 참혹했고 그만큼 장벽이 높아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국민들의 놀라움과 자부심은 더 컸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도 그것은 같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눈물도 자주 보이곤 했으니까요. 마음 깊은 곳에 내재돼 있던 깊은 ‘한 恨’이 어느 순간 일시에 해소되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어쩌면 심리학자 칼 융이 얘기했던 한 민족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집단무의식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한 시인은 “점심엔 평양냉면을 먹고 속이 든든해지면 길을 떠날 거야. 함흥부둣가 선술집에 들러 목을 축이고 개마고원 하늘에 맺힌 별을 본 뒤에 그 별을 가슴에 새기고 두만강에 닿아야지. 그리고 차가운 아침 새물에 얼굴을 씻고 그 물에다 휘갈겨 쓸거야”라고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그날 점심은 북한이탈주민이 운영하는 평양면옥에서 냉면 한 그릇으로 평화에 대한 허기를 달랬다지요.     

철조망이 사라진 비무장지대에 온갖 새소리와 꽃, 나비가 가득한 세계 제일의 평화로운 생태공원이 만들어질 그날을 기다리며 나도 잠시 꿈을 꿉니다. 평양냉면으로 가볍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그날,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막걸리 한잔을 나눌 수 있는 그날, 두만강 푸른 물에서 노를 저어가는 뱃사공을 볼 수 있는 그날, 우리가 나누게 될 아름다운 한편의 시 같은 풍경들을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봄날 평안도 쪽을 여행 하다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송아지가 탄생했다는 소식에 마을잔치가 벌어지는 장면을 목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도 그 시골 집 마당에 서서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며 ‘고향의 봄’ 노래를 한 곡 멋들어지게 들려줄 겁니다. ‘봄’이 와서 ‘봄’이 온 거라고 너스레 떨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우리들의 봄이 무르익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으면 정말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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