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따뜻한 눈빛과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전한 것처럼 나 또한 그들로부터 따뜻한 눈빛과 마음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건 아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아직도 지리산이나 깊은 시골 같은 곳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든지 먹을 것을 권하기도 하고 물을 전하기도 하는 등 인심을 베풀기도 하지요. 차마 그리운 곳입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이 도시에서 잃어버린 따뜻한 눈빛과 마음을 전해 받고 싶어서겠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낯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경계하게 되고 내가 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워지니까요.
얼마 전 스리랑카라에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쌍꺼풀이 있는 큰 눈에 긴 속눈썹, 순한 눈을 가진 검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은 경계라는 단어를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60~70년대를 보는 것 같은 풍경 속에서 그들은 남녀노소 모두 낯선 외국인이 지나가면 꽤 오랜 시간 눈을 마주쳤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내 마음은 그들의 눈빛과 더불어 말랑말랑해졌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그 나라에도 도시와 농촌·관광지가 있습니다. 내가 간 곳도 처음에는 농촌, 그 다음엔 관광지, 그 다음엔 공항과 가까운 도시였는데 가는 곳마다 타인을 대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들과는 동떨어진 이방인이기 때문이겠지요.
농촌에서는 카메라를 들이대도 마치 오랫동안 알아왔던 친구처럼 편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던 사람들이 관광지에 가니 어느새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다가오지 않았고 사진을 찍으려 하면 손을 들어 거부했고, 눈을 마주쳐도 잘 웃지 않았습니다. 그건 공항이 가까운 도시로 오면서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도 많아졌지요.
그것은 경제 수준과도 꼭 비례하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게 사는 농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람에 대한 경계가 조금 살만한 곳에서는 더 심해졌고 도시로 갈수록 우리나라와 똑 같이 섣불리 사람에게 다가가기 어려워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경제가 발전할수록 서로와 눈 마주치지 않은 세상, 사람이 사라지고 돈이 먼저가 되는 세상은 아프고 병들어가는 세상이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사람에게 사람이 보이는 세상은 경제라는 개념이 사라져야만 가능한 것일까요.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다시 이곳을 찾을 때까지 이 나라가 부디 더 발전하지 않기를,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도 시골에서는 지금처럼 오래 눈 마주치고, 웃어주고, 손 흔들어주고, 나와 어깨동무하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할 수 있기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내내 기도를 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