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42. 믿는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믿는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상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믿는다’는 말 앞에서는 어떤 다른 생각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는 믿음, 사랑, 소망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믿음 안에는 소망과 사랑이 모두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일을 부탁할 때 구구절절한 당부보다 그저 “널 믿어”하는 한 마디만 전하는 것은 어떤 말보다도 더 큰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믿는다는 말에는 모든 것이 포함돼 있으니까요.


세상은 점점 서로를 믿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위험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넘쳐나고 신용카드는 쓸 때마다 흔적을 남기니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어린이집에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 다른 말로는 선생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부모들의 걱정으로 인해 CCTV가 설치되고 심지어는 회사 내에도 CCTV가 설치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엄연한 법적 조항이 있고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CCTV가 설치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버젓이 감시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곳에서 우리는 점점 더 상대에 대한 믿음을 잃고 설 곳을 잃어갑니다. 예전에도 지금과 똑같이 범죄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는 체제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범인을 검거하는 확률은 더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는 셈이지요.


요즘 인기가 많다는 한 텔레비전 드라마는 1988년도를 기준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니 물론 옛 생각도 났지만 무엇보다 그리운 건 비록 속도는 지금보다 느리지만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휴대폰도 없고 유선전화로만 소통했던 당시에는 연락이 없어도 믿음 하나로 끝까지 기다려주었고, 마음을 전했던 편지에는 답장이 올 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려주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속도도 빨라지고 모든 환경들이 좋아졌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은 그만큼 줄어든 것 같아 서글퍼집니다.


물론 1988년보다 더 이전, 어쩌면 60년대, 그보다 더 이전에는 더 느린 속도로 살아야 했고 일 때문에 집을 떠나면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오로지 믿음 하나로 기다려야 했으니 사람에 대한 믿음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어떤 문화평론가는 현실이 답답하고 희망이 없어질수록 옛 추억을 떠올리는 복고풍 드라마가 유행한다고 말합니다. 첨단과학이 일상화되고 갈수록 편리해지는 현대사회가 어째서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인식되는 걸까요. 어쩌면 너무 빠른 속도가 일상화되다 기계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믿음은 상대적으로 점점 옅어지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정말 어떤 소중함들 잊고 살아가는 걸까요.      

이전 28화 43. 오늘이 마지막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