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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43. 오늘이 마지막이야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이 글도 올해의 마지막 글이군요. 쉼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누가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시작과 끝이 있어 희망을 갖기도 하고 주변정리를 하기도 하니 어쩌면 참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한해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역에서는 메르스로 인해 경제가 마비지경에 이르기도 했고 평택항 매립지 경계분쟁에서는 평택이 소유권을 가져 시민들이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역사에 오래 남을 삼성전자 기공식도 있었네요. 개인적으로는 시인으로 등단한지 칠년 만에 첫 번째 시집이 나왔고 어린 시절부터 소망이었던 예쁜 할머니의 꿈을 이뤘다는 게 가장 큰 일이었지요.


한 해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힘든 순간보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매일 아침 분주한 모습으로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었고, 힘들 땐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곁에서 밥과 술을 함께 나눠주었고, 훌륭한 지식을 전해 받을 수 있는 스승들이 곁에 계셔주었으니 참 복 많은 한해였다 싶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가장 큰 습관은 아침마다 일과표를 짜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5시 반에 기상해서 잠자리에 드는 열두시나 새벽 한시까지 제 일과표는 늘 빽빽하게 시간에 맞춰 작성되곤 했었지요. 그만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 일과표대로 움직여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마음 편하게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버릇처럼 만일 이대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 아이들이 엄마를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이라고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습관은 아마도 십여 년 전쯤 내 몸에 큰 이상이 생겨 병원에 드나들던 때부터였겠지만 타인의 죽음까지 한 병실에서 목격해야 했던 그 일은 지금까지도 그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하도록 만들곤 합니다.


사람의 인생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는 생각, 나도 내일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지만 그때부터는 매일매일이 내게는 끝이었고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끝을 생각한다는 것은 시간이 정말 아까워지는 일이더군요. 많은 지식과 권위를 가졌음에도 함께 했을 때 내 마음의 성정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보다는 함께 있으면 따뜻하고 편안한 소박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해지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행한 일들이 계속 마음에 머물러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행복하다 느끼면 주변의 행복한 순간순간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행복하게 만드니 어쩌면 행복은 내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잠자리에 들면 내일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다보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이 내 마음속에 찾아올 테고, 그러면 어느 순간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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