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시어머니는 내게 ‘책만 본다고 공부가 아니다. 사람공부가 진짜 공부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책을 보며 하는 공부는 ‘가짜’이고 진짜 공부는 ‘사람공부’라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상대방을 오래 사귀지 않는 다음에야 누구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상대방을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사소하게 지나가는 행동 하나하나에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살필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사람도 공부해야 한다는 그 말은 과히 틀리지 않은 말인 듯싶습니다.
예부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내 안에 들어있는 내 마음도 하루면 열 두 번씩 생각이 바뀌는데 하물며 내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이야 속속들이 헤아릴 방법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가려서 사귀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유한한 우리의 인생을 조금 더 잘 사는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일이 막혀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할 때, 나는 주로 논어나 맹자 같은 고전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리타분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고전을 현대에 접목해 읽다보면 뿌연 안개 속 불빛처럼 해답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중국의 주나라에는 훌륭한 인재를 고르는 여덟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일명 ‘팔징지법 八徵之法 ’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어떤 사람이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되는지 내게 가르쳐 줍니다. 어머니가 말한 진짜 ‘사람공부’인 셈이지요.
팔징지법은 첫째, 말로 질문해서 그 사람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둘째, 말로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고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능력을 검증하는 겁니다. 셋째, 주변 사람들의 평판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평판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의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다섯째, 그에게 돈을 맡겨서 그 사람의 도덕성과 자기관리 능력, 책임감을 동시에 평가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여색을 시험해서 그 사람의 정조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어려운 상황에서 그 사람의 용기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여덟째, 술에 취하게 해서 그 사람의 절제와 숨겨진 습관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별하는 이 방법은 아마 현대 사람들에게 접목해도 크게 오류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여덟 가지 평가를 모두 통과한 사람이라면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로 삼거나 아니면 일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저 기준들을 나에게 적용했을 때 나는 과연 몇 가지나 통과할 수 있을까요. ‘나에게는 엄격하고 상대에게는 너그럽게’ 해야 하는데 요즘 우리는 너무 자주 ‘상대에게는 엄격하고 나에게는 너그럽게’로 바뀌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