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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59. 사람 ‘人’

사람을 뜻하는 ‘人’자는 막대기 두 개가 기대있는 형상입니다.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사람’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혼자 지내다 죽은 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웃을 모르니 어려움에 처해도 부탁할 사람이 없습니다. 생판 모르는 이웃집 대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상 이웃을 사귀려니 모두 문을 닫아놓은 터라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요즘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1980년대를 재연하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식사 때마다 아이들에게 접시를 들려주며 갓 요리한 음식들을 이웃과 나눠먹는 장면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나 역시 식사 때면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옆집으로 앞집으로 심부름을 가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예전에는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도 바로 이웃이었습니다. 엄마는 내 등록금 줄 돈이 없으면 이웃에게 가서 돈을 꾸기도 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이웃집 아주머니를 찾아가 털어놓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들을 통해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며 자랐었지요.     

요즘 사람들은 옛 모습들이 담긴 드라마를 보며 ‘그래, 맞아, 저런 때도 있었지’ ‘그땐 정말 그랬어’ 하며 무릎을 칩니다. 입가에는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당시의 상황들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그 말들을 듣다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됩니다.     

과학은 발달하고 기계는 어제와 오늘이 다를 만큼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느새 느린 것들을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기다림이 없어지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경향이 늘어갑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라는 틀 속에서 고립되어 갑니다. 그런 외로움 속에서 타인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끔찍한 범죄도 늘어갑니다. 뉴스를 보면 밤사이 일어난 범죄들은 왜 그리 많은지, 그렇게 많은 범죄들이 일어나는데도 우리는 별다른 피해 없이 아침을 맞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위안해야 할까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독불장군처럼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세상이고 ‘홀로서기’는 성인들의 필수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듯이, 조금도 외롭지 않다는 듯이, 한 번도 눈물 따위는 흘려본 적 없는 것처럼 씩씩한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조금 부족해도 그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고, 상대의 부족함을 내가 메워줄 수 있는 세상은 과연 환상일까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그런 것이 일상이었는데 우리는 왜 그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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