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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Jul 26. 2021

여름,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 매미

미물일기 #4

뜨거운 여름, 매미가 맴맴거리며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이 여름, 잘 살고 계십니까?"

매미가 스스스스스하고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 "저는 살아있습니다. 제 울음이 언제 그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전하게 살아있습니다. "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기 전인 6월 말, 올해 첫 매미소리를 들었다. 지금까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 궁금해졌다. 이 매미는 무슨 매미일까? 매미는 스~~~~~~하고 시원하고 청량하게 울었다. 유튜브에 매미 울음소리 종류로 검색해보니 다른 매미들보다 빨리 울기 시작하는 털매미였다.


여름을 맞아 반팔티 두 개를 사고 에어컨 청소를 했다. 소파 커버를 여름용으로 바꾸고 얼음을 잔뜩 얼리면서 단출한 여름 준비를 마치려던 차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종류마다 다른 매미 울음소리를 여러 번 듣고, 도서관에서 매미에 관한 책을 빌렸다. 스~~~~~~~하고 우는 털매미. 쓰름쓰름하고 우는 쓰름매미. 맴맴 맴맴 매애애앰하며 우는 참매미. 쓰~~~~~~하고 우는 말매미. 쓰암 쓰르르르 쓰암 쓰르르 쓰암 쓰암(이라고 적어보지만 정확히 문자로 표현할 길이 없는) 우는 애매미. 이밖에도 풀매미, 유지매미, 늦털매미 등등. 음감이 좋은 편이 아니라 울음소리만으로 매미 종류를 척척 알아내는 일이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작은 목표가 생겼다. 매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매미가 우네'가 아니라 '참매미가 우네'라고 정확하게 매미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아빠는 메뚜기나 방아깨비, 잠자리 같은 것을 잡아서 어린 내 손에 쥐어주곤 했다. 아빠의 채집목록에는 당연히 매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몸체는 크고 등이 얼룩덜룩해서 살짝 징그러웠다. 하필 잡힌 매미가 수컷이어서 갑자기 손에서 큰 소리로 울어대는 바람에 기겁했던 기억도 있다. 이제 막 우화해서 투명한 초록색을 띄고 있는 매미나 매미 허물이라면 모를까 지금도 살아있는 매미를 손위에 올려놓지는 못한다. 크고 까만 눈은 예쁘지만 다른 곤충과 비교했을 때 매미의 생김새가 귀여운 편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비록 외모가 개인적인 취향과 부합하지는 않더라도 나는 매미를 좋아한다. 오랜 시간을 유충으로 땅속에서 살다가 짧게 지상에서 짝을 찾아 번식을 하고 죽는 매미의 생애주기(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유충으로 3~7년, 성충으로는 한 달 정도)는 긴 기다림 뒤에 맞는 짧은 절정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여름이 되면 나타나는 친숙하면서도 반가운 곤충이기도 하다. 매미 울음은 우리가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지난여름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그리운 소리. 그렇기에 소음공해가 될 수 있는 매미소리에 불평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애잔한 서사를 가진 여름 손님의 노래를 너그럽게 참아주면 안 되겠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짝을 찾는 청혼가가 아닌가.








이제껏 몰랐던 매미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매미는 종류마다 서식하는 나무가 다르며 하루 중 우는 시간대도 다르다. 도심에는 우리나라 대표 매미인 참매미뿐만 아니라 울음소리가 큰 말매미도 많이 서식하는데 그 이유가 말매미가 좋아하는 플라타너스가 도심에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미 수컷은 한 번 울고 나서 자리를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울음소리가 나서 나무를 쳐다보면 매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매미가 부끄럼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

-매미는 일정 온도 이상이 되어야 울며 빛에 반응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밤에 매미가 우는 현상은 열대야와 조명 때문이다. 이상기후와 빛 공해로 매미들도 고생이 많다.

-매미는 종류에 따라 모여 울기도 하는데 천적인 새들의 교란시켜 사냥 성공률을 떨어트린다고 한다. 그래서 매미들의 합창대회가 자주 열리나 보다.






여름에는 삶도 극성, 죽음도 극성이다. 매미는 쉴 새 없이 땅속에서 나와 허물을 벗고 울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다음 나무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하늘은 매미 울음소리로, 땅은 소명을 다하고 고요해진 매미들로 가득하다.


대단지 아파트에서 참매미와 말매미 이외의 다른 매미의 이름을 부를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얼마 전에 예상치 못한 발견을 했다. 베란다 창을 열어놓고 매미 소리를  듣고 있는데 참매미와 말매미의 웅장한 이중주 사이로 가느다랗게 찌이이이이하는 전자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금방 소리가 사그라들어 잘못 들었나 하고 넘어갔는데 얼마 뒤 아파트에 유지매미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외계인과 교신이라도 하는 듯한 울음은 유지매미의 소리였다. 유지매미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참매미와 말매미 사이에서 열심히 우는 유지매미의 소리를 분간할 수 있게 됐다.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나무줄기에 달려있는 매미 허물의 개수를 센다. 더 유심히 나무 위에 붙어 울고 있는 매미들을 바라보고, 더 진지하게 땅에 떨어진 매미들을 살피며 여름을 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리고 고맙게도 안부를 묻는 매미에게 대답한다.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 여름을 즐기고 있습니다."



참고도서

<매미 박사 이영준의 우리 매미 탐구>, 이영준, 지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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