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에서 깨어나게 한 사람

by 여지나

나는 모범생이었다.


성적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학교나 가정에서 눈 밖에 난 적은 없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대부분 괜찮았고 최소 차악은 됐으니 만족했다. 틀 안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어른이 되어 처음 해본 연애는 신선했다. 상대는 비교적 자유로운 성향이었다. 같이 산을 오르다 계곡을 만나면, 그는 준비도 없이 내게 발을 담가보라 했다. 내가 그어 놓은 한계선을 늘 적절히 넘어섰고 그 다정한 자유가 좋았다. 알에서 막 깨어난 듯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결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가 '나누어서 하자'라고 하면 그는 '상황에 따라 하자'는 식이었다. 가족과 관련된 것은 더 복잡했다.


달콤함의 이면이었다. 내가 살아오며 만났던 벽 같은 게 결혼생활에도 있을 줄은 몰랐다. 툭 건드리면 넘어갈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그와 발을 맞추려 노력할수록 내 세계는 작아졌다.


좁지만 안락했던 알이 그리웠다. 재미는 덜했지만 지금보다 확실히 편했다. 적당히 준비하고 책임지면 삶은 어렵지 않았다. 많이 누리려 하지만 않는다면.


그렇다고 되돌아가고 싶은 지점도 없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결혼에 대해 다시 공부했다. 장막을 걷어내니 마음 깊은 곳에 그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당연한데도 면했던 것은 결혼은 '성장'이라는 말이었다. 솔직히 성장하고 싶지 않았다. 행복이면 충분했다.


지나온 삶에 대한 보상을 결혼에 기대했었다. 거기에 청구할 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씁쓸했지만, 다행히 그의 장점은 그대로였다. 행동 방식의 차이를 제쳐두면 그는 여전히 내게 기쁨을 주고 싶어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벽에 있던 문이 보였다. 시야가 넓어졌고, 옳고 그름 이상의 무언가를 체득했다. 멀리서 본 우리는 꽤 희망적이었다.


와 행복하려면 내 세계를 넓혀야 했다. 그는 현재의 즐거움이나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내게도 주고 싶어 했다.


그는 나보다 나를 더 많이 허용했다. 내 공부를 조건 없이 응원했고, 없는 형편에 노트북을 선물했다. 그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지금 처음으로 친구와 자전거여행을 떠나 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에 잠도 못 자던 그가 귀엽게 느껴진다. 그는 겹겹이 쌓인 자신의 알을 깨며 내 알도 함께 두드리고 있다.


이제는 그가 내 세계를 일찌감치 두드린 게 원망스럽지 않다. 그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나왔어야 했다. 바깥에는 예보다 많은 길이 있었다.

keyword
이전 21화어느 날은 내 글이 모두 거짓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