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춘기 무렵, 내 주머니 속에서 작게 빛나는 '희망'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우린 계속 함께였다. 집에서 난리가 나거나 성적이 떨어져도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미래에 자신이 잘 될 것 같냐는 질문을 하면, 답변은 언제나 '5. 매우 그렇다'였다.
반짝이는 희망을 챙겨 사회에 들어섰다. 고비도 많았지만 직장을 얻고, 결혼도 했다. 그렇게 된 지도 어느새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만난 쾌락과 고통의 형태는 전부 초면이었다. 외면하다 받아들이기를 반복하며 시간은 착실히 흘렀다. 그동안 껍데기는 어른스러워졌고, 에너지 총량은 줄었다.
그 사이 주머니 속 희망은 여러 번 가출했다.
조건도 점점 까다로워졌다. 맛있는 음식이나, 쇼핑, 여행 같은 걸 요구하는 날이 늘어갔다. 희망을 데려오는 일은 날이 갈수록 번거로웠다. 돈이나 여유 중 하나는 필요했기에 둘 다 없을 땐 그냥 포기했다. 그런 게 충분치 않으니까 희망이 필요했던 건데, 주객이 전도되니 빈 주머니가 익숙해졌다. 언제부턴가 녀석을 기다리지 않게 됐다.
녀석이 짐까지 챙겨 나가자, 원래 갖고 있던 능력이 하나 사라졌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희망과 닮은 녀석의 정체는 '회피'였다. 회피가 자리를 비운 삶은 훨씬 무거웠다. 눈앞에 보이는 순간만 생각하며 살아야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그를 잊어갈 무렵,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현실이 버거울수록 키보드를 두드리는 횟수가 늘었다. 털어놓을 수 없는 어둠을 가감 없이 쓰고 나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았다. 더 어릴 땐 나만 힘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이미 깨우친 지 오래였다.
'이런 걸로도 힘이 될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그와 나 모두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나와 똑같이 살아 본 사람은 없으니까. 수없이 다듬어도 투박해 보이는 글을 하나씩 공개했다. 예상보다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회피와 멀어진 나는 행복의 빈도가 줄었지만, 한 번씩 만나는 행복들은 나와 닮아 있었다. 그 안에는 진실한 기쁨이 있었고, 자잘한 감사와 일상, 있는 그대로의 나, 그리고 거짓 없는 희망이 함께했다.
희망의 모양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주머니가 생각보다 널찍한지, 회피도 다시 그 안을 들락거렸다. 예전처럼 오래 머물진 않았지만.
희망은 조용히 다가와 한 번씩 나를 일으켜주었다.
그를 까맣게 잊어버린 오늘도, 늦은 밤 찾아와 준 것처럼.
그동안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기간 쉬었다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