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게 된 나를 지키는 법
'착하고 똑똑한 아이'
내가 들으며 자랐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미지다. 어릴 때부터 꼭 지키려고 했던 것은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맡겨진 일은 꼭 해내기.
내가 한 일은 반드시 책임지기.
당연해 보이지만 아이로서는 쉽지 않았다. 똑 부러진다는 말을 듣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확인했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 플랜 B, C를 만들었다. 그래도 안되면 원인을 찾아보고 최대한 예방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시작 자체를 귀찮아하고 또 금방 지치는 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계획적이고 꼼꼼한 사람 같다고 평가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민망한 듯 "에이, 아니에요"라고 하는데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나는 미루는 게 좋다. 최대한 미루고, TV를 보거나 휴대폰이나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위험할 정도로 촉박해지면 그제야 집중이 되기 시작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휴식이 정말 좋다. 중요한 행사라고 해도 솔직히 가기 싫다. 북적북적한 축제는 기피 1순위다. 축하의 한 마디를 위해, 감당할 것이 많은 곳은 좀 벅차다.
가끔은 친절하고 싶지 않다. 가게에 가면 말없이 상품만 계산대에 올려두고, 끝나면 꾸벅 고개만 숙였다 나온다. 그런 날이 많지는 않지만, 사실은 꽤 자주 그러고 싶다.
그렇지만 동시에 반대편의 나를 포기할 수도 없다.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평가가 달콤하기 때문이다. '역시 믿을만하다'는 눈빛이나 신뢰의 말은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다. 아마 이런저런 내가 모두 나일 거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평가'에 지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딸, 현명한 아내, 든든한 엄마가 되기 위해
믿음직한 동료나 사려 깊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
그런 것이 되기 위해 무너지는 날이 있다면, 내가 나를 허용하는 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신호다.
역할이라는 이름, 과도하게 잘하고 싶은 마음, 때로는 분위기를 위해, 내가 쉴 수 있는 한구석마저 곧장 내어주곤 했다. 다행히 이제는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주 잠깐의 휴식, 한숨 돌릴 수 있는 공간,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나 사진, 글, 그림 같은 것들이 의외로 매일같이 필요했다.
그 외에도 필요했던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보는 것. 너무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면 자꾸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난다. 작은 것이라도, 가끔이라도, 내 결정으로 뭔가를 해보는 경험은 삶에 꼭 필요했다.
가장 큰 문제는 거절하면 생기는 분위기 때문에 대부분 들어주던 습관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편해도 견뎌보아야 '정당한 거절'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으나 누군가에겐 정말 쉬웠을, 겨우 한마디의 거절.
"너무 바빠서 도저히 안될 것 같아요."
"미안해,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
용기 내어 말해보았다. 최대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며 상대가 서운하지 않기를 기대했지만, 역시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순간의 불안함을 참아내고 뒤돌아섰다. 그리고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번의 어설픈 용기를 내다보니 아주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연습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을 뿐이다.
뭐가 더 우선인지, 이제라도 알아가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30대 후반인 지금에서야 이러고 있는 게 어쩌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숨이 더 잘 쉬어지는 느낌이다. 하루의 무게가 가벼운 날들이 늘어간다. 물론 여전히 아닌 날도 많지만, 변화의 바람이 느껴지는 건 언제나 참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