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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셔츠 입은 경비아저씨

전보다 더 소중해진 우리의 주변

by stellaㅡ별꽃 Aug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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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말씀드린 홍ㅇ분께서 인지 능력을 아예 상실하셨나 봐요. 치매셨는데 뇌졸중까지 겹쳤다네요. 후견인 정하는 절차도 복잡하고......"


"지금 저한테 말씀하시는 거예요?"


"선생님께 말씀을 안 드리면 그럼 누ᆢ구한테......?"


"아이 저 은형이 남편이에요. 다음에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닷!"


이런! 운데 한 글자만 다른 사람의  폰번호를 눌러버렸네. 상대의 뛰어난 순발력에 감탄한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세상 재치마저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 진짜 돌겠네. 깐만! 전화기 좀 찾고~~ 가방에도 없고 어딜 간 거야. 분명 너랑 통화하기 전에 손에 들고 있었거든."


"금 나랑 통화하고 있는 건 ??"


친구는 매번 전화기를 찾는다. 나도 그렇다. 출근도 퇴근도 한 번에 하기가 점점 쉽지 않다. 전화기를 두고 나와 다시 집에 들어가서  차키를 두고 나온다. 생각이 많아진 걸까 아님 세상이 복잡해진 걸까. 둘 다 아니고 친구랑 내가 늙어가고 있는 게 팩트? 격히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신 차릴 것이 자꾸 많아진다.


지나던 길에 찍어 둔 사진지나던 길에 찍어 둔 사진

" 임신해뚀?"


"네? 아가씨가 임신했다고요?"


"아니 아둠마 임신 해딴아요."


옴마! 내가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무슨 소리. 주유를 도와주던 아가씨의 생뚱맞은 소리에 아무리 몸을 둘러보고 만져봐도 임신한 흔적은커녕 뼈(ㅋ)만 스캔되는데.


"고마워요.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ㅎㅎ."


세상이 변해가는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 속에서  뜬금없는 엉뚱함 발사하는 매력 덕분에 화살을 맞은 사람은 괜히 유쾌해진다.



다음 인터넷 사진 캡쳐다음 인터넷 사진 캡쳐

"사모님 출근하시나 봐요. 사장님도 버시고 사모님도 버시고 좋으시겠어요."


"네네. 큰일 났네요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좀 드릴까요?ㅎㅎ"


우리가 사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아파트 관리를 위해서 태어나신 분 같다. 이 한 몸 다 바쳐 아파트를 지키리라는 결의를 눈빛으로 발사하고 닝셔츠 바람으로 매일 옆구리에 무언가 끼고 달리 쓰레기통으로  투하한다.


끔은 쓰레기통을 열어놓은 다음, 오른쪽 다리를 뒤로 뻗고, 오른손에 든 무언가를 두세 번 던지는 시늉을 한다. 순간 표정은 비장해지고 '슛!'투척된  그 무엇은 정확하게  통속으로 사라진다.


양손 바닥을 탁탁 치며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아저씨 얼굴엔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게 분명.


 닝셔츠 아래 바지는 급하게 입었는지 쓰레기를 투척할 때마다 허리 아래와 엉덩이 윗부분이  살짝 보이니, 보는 사람들 가슴 졸밋거린다.


 세상 구경해보겠다고 싹이라도 내미는 날은 여지없이 아저씨의 손에 의해 온몸이 주욱 뽑 제삿날이 되어버리는 잡초의 운명 가혹하다. 동네 강아지 이름도 줄줄이 꿰고, 가가호호 아이들 이름도 줄줄 꿰니 주민들과의 유대감도 돈독하다.



"야ㅆㅂ@#%&^*¥$※웩툡ㅌㄲ뿍빡박₩¿"


어느 날, 어디선가 들리는 어마 무시한 욕설에 주민들이 구경을 나섰고, 생전 듣도보도 못한 욕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는 분은 누구? 어머머! 경비아저씨다. 닝셔츠도 탈의한 채 마주 보기가 영 민망한 모습, 그 앞에 죄인처럼 서 있는 순진무구한 표정의 청년.


이유는 이랬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은 청년, 아니 한 아이의 아빠는 광고지를 돌리는 알바 중이었고 불법 전단지 배포 단속이라는 아저씨 그물에 덜컥 걸린 것이다.


"아 씨! 욕  좀 그만하세요. 제가 사과를 몇 번을 했는데."


"야 이 xx 지금 너 뭐라고 했어. 씨~이?? 이게 진짜..."


죄송하다는 젊은 가장의 사과가 있었음에도 오랜 시간 단련하고 숙성시켜 온-혀가 짧기라도 하거나 소리통이 작으면 절대  할 수 없는-고난도의  욕을 골라 속사포로 내뱉는 아저씨는 가히 욕의 세계에서 위의 서열을 차지할 것임이 명백다.


 잘잘못을 떠나 측은지심이 발동한 사람들은  젊은 가장에게 동정표를 던지는데. 말리는 주민들을 밀어부치는 아 욕은 점점 가열차다. 금슬금 눈빛을 교환하 오른쪽 머리 끝을 현관문 방향으로 두어 번 비는 사인을 보내던 주민들은 하나 둘 사라진다.


" 저 아저씨랑 친한데 오늘 보니 통이네. 뭐라도 걸리는 날엔 그동안 쌓아온 인격 다 털리겠어. 조심해야겠다."


다음날 출근하는 주민들에게  씩씩하게 인사하는 아저씨는  닝셔츠 차림으로 옆구리에 무언가 끼고 다시 달린다. 아파트를 위해 태어나신 아저씨의 하루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 주변머리가 없는 아저씨는 머리 정수리부터 이슬만 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온몸 땀으로 벅이 되어있다.


주유하다 찍은 뿡경주유하다 찍은 뿡경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기억력이 감퇴하기도 하고 건망증과 섬망 지근에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때론 무언가 잊고 싶기도, 잊히고 싶을 때도 있다. 코로나의 횡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시절을 보내며 개개인의 삶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유쾌함을 잃지 않는 사람도, 코로나를 전혀 모르는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사람도, 생뚱맞은 소리로 상대를 당황케 하는 사람도, 어쩌면 전보다 더 소중해진 우리의 주변이다.

아파트와 주민을 위해서라면 뭐든 불사하겠다는 경비아저씨의 처절한 책임감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 틈에 이 시대 청년가장의 슬픈 자화상이 걸려있다. 희비가 더욱 극명해진 세상이다.


수술장면수술장면
압구정동에 있는 모 안과에서 시력 회복술을 하는 친구를 기다리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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