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경제 이후에 태어난 “사토리 세대”
사실 난 과거의 역사보다 현재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현재를 더욱 현명하고 잘 살기 위해서 배우는 거라 생각한다.
역사란 “인류의 오답노트”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현재를 더 잘 살려고 하기 때문이고 말이다.
그래서 사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역사라면 모르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굳이 알 필요도 없고, 그 시간에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가 저번에 일본의 버블경제라는 역사를 이야기한 건 정말로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고 나발이고, 그냥 저 옆 나라 일본과 교류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 일본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나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번 내용은 알아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몰라도 연애할 수 있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상대를 더 잘 이해하는 것으로 연애를 잘하고 싶고, 상대방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아는 것으로 비즈니스를 더 잘할 수 있다. 내 글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오답노트이자 그들과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내 글을 읽는다고 무조건 더 나아질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해답이 될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번 글을 이해하기 위해 저번 글을 꼭 읽는 게 좋다.
버블 경제로 인한 충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저번에 이야기했듯이 버블 붕괴는 그냥 경제가 붕괴한 걸로 끝난 게 아니다.
일본 사회 자체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일본인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잘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것이다.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었던 자산가인 내가 갑자기 집도 없어지고, 빚은 억 단위로 쌓이게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파산을 맞이하니, 당시의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의 미래가 답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시 부동산 대출 완화가 있었기 때문에 금액의 단위가 엄청 클 수밖에 없었음.)
그러니 자살률도 올라가고 이혼도 증가하고, 실업까지 증가했다.
당시엔 개개인의 인생이 힘드니, 결혼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당시에 새로운 인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시작은 ‘니트족’이었다.
저번 글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버블 붕괴 이전에는 일본은 정말 잘 살고 있었다. 기업들은 신입 사원들이라고 하면 데려가려고 했고, 대학에서 아예 직원을 미리 스카우트해서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기업에서 스카우트하는 내정이 아니면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전에 내정이 취소당하기도 했고, 회사가 아예 망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니 취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취업은 잘 되지 않는다. 계속된 실패에 일할 의욕도 사라지게 되었다. 사회적 분위기도 암울하고 우울하니, 그 생각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신 인류가 ‘니트족’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이 필요하니 먹고살긴 해야 한다.
그렇지만 마땅히 취직할 곳이 구해지지가 않는다.
그렇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것으로 연명하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연명하는
‘프리터 족’
내 인생 하나 살기도 힘들다.
돈은 없고, 시간이나 마음적인 여유가 없다.
그러니 그냥 연애 따위에 관심을 끄자.
연애와 결혼을 버린
‘초식남’
세상이 너무 각박해..
사회에 적응하지 않아도 나만의 공간에만 있으면 돼.
굳이 나갈 필요가 있을까?
현실이라는 지옥을 멀리하고 도망친
‘오타쿠와 히키코모리’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할 “사토리 세대”가 있다.
개인적으로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만날 유형이 “사토리 세대”가 아닐까 싶다.
오타쿠나 히키코모리는 솔직히 만나기가 어렵다. 이 사람들은 던전의 몬스터처럼 출몰하는 지역에만 등장해서 거기에 가지 않는 한은 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프리터를 편의점에서 만날 수는 있어도, 오랜 관계를 유지하진 않을 것이다. 프리터와 만나는 걸 시작하기도 어렵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초식남 와 연애를 한다는 건 애초에 일본에 살아야 가능한 일일 테니, 여러분이 만나는 유형은 “사토리 세대”를 가장 많이 만나리라 예상된다.
사토리 세대는 일본의 현재 2030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2030 세대라는 말을 썼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지금은 40대로 넘어간 사토리 세대도 있으리라 생각되기에, 2030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주면 좋을 거 같다. 현재의 20대 초반들은 2000년대 세대이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는 도중이니까 말이다. MZ가 훨씬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MZ라는 구분도 너무 애매하지만 말이다.
“사토리 세대(悟り世代)”라는 말에서 “사토리(悟り)”는 한국어로 “깨달음, 알아차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저 단어는 보통 불교 같은 곳에서 무언가를 득도해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토리 세대는 멸망해버린 자기 주변 환경을 보고서 무언가 깨달은 세대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각종 유흥이나 사치, 돈과 명예에 그다지 흥미가 없다.
마치 득도한 승려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깨달은 수도승처럼 현실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토리 세대는 명문 대학이나 대기업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하고자 하지 않는다. 명문 대학을 나와서 자신의 노력이 보장받은 경우보다도 좌절하고 실패한 경우를 많이 봐왔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방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라면 굳이 비싼 명문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집 근처 대학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사토리 세대는 도전과 노력의 과정에서 실패한 경우를 더 많이 본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에 도전했을 때의 위험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들보다 잘 알고 있다. 장기간의 경제 불황과 힘든 가정환경, 실업과 경제 위기로 취직을 고생하던 이들의 모습을 봐왔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사토리 세대는 ‘안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길을 가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굳이 어렵고 위험한 길을 갈 필요가 있을까?
빚을 내면서까지 내 집을 살 필요도 없다. 어차피 지진으로 무너질 수도 있고, 내가 빚에서 나오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정규직 입사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일이 맡겨지고 실패했을 때의 책임이 따라온다. 굳이 아르바이트로도 생계를 연명할 수 있는 걸 굳이 왜 정규직에서 힘들게 해야 할까? 정규직이 되면 그만큼 해야 하는 일도 늘어나기에 위험을 늘어나는 데 말이다.
이렇게 위험을 감당할 필요는 없지.
그냥 내 취미를 즐기며 살아가자.
굳이 연애를 통해 서로 간의 관계에서 위험도 쌓을 필요가 없어.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주식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돈을 잃는 경험은 말도 안 되게 고통스럽다.
정말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겨우 지폐 쪼가리와 휴대폰 상에 있는 숫자가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여기서 억대 빚이 생겼으니 오죽할까.
버블 붕괴를 보면서 돈을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다. 어렵게 말하면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세상은 바꾸고 만들어나가는 것은 사람이다.
세상은 결국 사람들과 그 외의 것들이 다 섞여서 우당탕쿵탕하는 과정에서 발전하고 나아지고 때로는 후퇴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버블 경제는 일본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후퇴하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혹은 이대로 후퇴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감히 내가 일본의 역사를 보고서 평가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도전을 포기하고 디플레이션의 시대에 접어든 일본은 후퇴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을 보는 사람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일본이라는 오답노트를 잘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인해 끊임없이 늘어나는 자신의 거짓된 돈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이건 코로나 이전의 한국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금 한국의 경제는 코로나 이전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당시에 부자가 된 사람들은 전부 지옥을 맛봤다. 과거의 일본처럼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포기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보고서 “그 뱡향이 옳습니다”, “그 방향은 틀립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개개인마다 원하는 목표나 바람이 다 다르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삶을 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번 목표에 도달하는 걸 실패했다고 해서, 누군가가 실패한 모습을 봤다고 해서 내가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나의 실패라는 오답노트를 가지고서, 어디든 좋으니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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