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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un 09. 2019

수영

균열


창문에 올라서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든 생각은 ‘병원에 가야겠다’였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내게 사람들이 흔히 우울증이라 부르는, ‘우울장애 증상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주요 우울 삽화. 진단서엔 그렇게 무심하면서도 담백한 텍스트가 적혔다.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하던 날들이었다.


- 이상하게 수영이랑은 싸운 것도 없이 점점 멀어지게 됐어.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미세한 균열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는 그런 사이있잖아? 수영이랑 내가 그렇게 멀어졌어. 연락을 주고받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어색함만 더 늘어났지. 그렇지만 둘 다 이 관계를 당장 끝내버릴 용기도 없었던거야. 눈에 띄는 갈등이 있었다면 차라리 관계를 끝내거나 유지하는 일이 조금 더 쉬웠을까? 수영이와 나 사이의 균열은 오랜 시간동안 공을 들여 생겨난 만큼이나 단단하고 견고하더라고. 그걸 몰랐어.


수영이랑 연락 안하고 지낸지 얼마나 됐는데?


- 4년 전이었나. 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문자를 보냈어. 근데 수영이는 답장이 없더라고. 나도 '답장이 오면 뭐라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나' 하고 걱정하던 차여서 차라리 잘됐다 싶었지. 그 뒤로는 연락을 안하고 지냈어. 얼굴도 못 봤고. 근데 있잖아, 수영이가 죽기 일주일 전쯤에 부재중 전화가 왔었어. 다시 걸기 귀찮아서 자기가 급하면 하겠지 싶어서 그냥 뒀는데 전화가 또 오지는 않더라고. 잘못 걸었나보다 생각했어. 그때 수영이가 나한테 하려던 말은 뭐였을까? 죽고싶다는 이야기였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수영이가 나에게 남기려던 부재중 메시지는 뭐였을까 하고.


한때 늘 붙어 다녔던 수영이의 자살 이후, 내게는 하나의 버릇이 생겨났다. 술자리에서 수영이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일이었다. 대화의 시작은 달랐지만 끝은 늘 수영이 얘기였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죽은 수영이에 대한 푸념을 한바탕 토해내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전날의 나를 자책하곤 했다. 죽음에 대해 그토록 가볍게 떠들고 다닌다니. 친구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슬픔에 사로잡힌 내 모습을 나는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보는 일은 꽤 고통스러웠다. 매번 반복되는 자책은 내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되었고, 한동안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지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을 만나 술을 한 두잔 하고 나면 내 입에서 나온 언어의 방향은 늘 죽은 수영이에게 향했다.


피아노의 자리


내 방 한켠에는 늘 피아노가 있었다. 내 나이보다도 더 오래된 낡은 피아노였다. 이미 피아노는 본래의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물건을 쌓아두는 선반이 되어버린지 오래였지만, 한때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었던 엄마의 상징물처럼 피아노는 내 방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가끔씩 내가 피아노의 육중한 덮개를 열고 한때 잠깐 배웠던 곡을 더듬거릴때만 피아노는 본연의 제 역할로 기능했다. 하지만 피아노에 낯설어진 내가 하나의 악보를 끝까지 연주하는 일은 드물었다. 점점 더 피아노를 치는 횟수는 줄어들었고, 마침내 악보에 적힌 단 한마디도 제대로 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나 역시 피아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의 보물에서 짐으로, 무기력한 상징물로 변해가던 피아노는 집안에 새로 도배를 하던 어느 날 우리 집에서 쫓겨나듯 버려졌다. 엄마는 표정에는 아쉬움보단 홀가분함이 더 크게 드러나는 듯 했다. 나는 피아노가 우리 집에서 버려지던 날, 어쩐지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피아노가 사라진 방은 어색할 정도로 넓었다. 그래 봤자 불과 5평 남짓에 불과한 작은 방이었지만.


어느날 늦은 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습관적으로 피아노가 있었던 위치에 손을 짚은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나는 피아노가 사라진 방이 나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무언가가 들리지 않는 거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견딜 수 없이 외로워진 나는 그날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 넘어진 채로  소리 죽여 울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서 깨어났다. 피아노는 우리 집에서 사라져 있었고, 우울감은 사라진 피아노의 자리를 채우며 나를 찾아왔다.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들의 부재가 못 견디게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계속됐다. 상실감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대상의 부재에서 왔다. 무언가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 무언가를 잃는 일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상실감과 부재가 사람을 훨씬 더 힘들게 만든다는 걸, 한때는 피아노가 있던 빈자리를 통해 알게 됐다. 


수영이의 죽음이 괴로운 이유는 내가 그녀와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도, 친구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수영이는 내게 방 한켠의 피아노 같은 존재였다. 익숙해서 잊고 살지만 꽤나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라진 뒤의 부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존재. 보물에서 짐짝으로, 그저 그런 상징물로 변해버린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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