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교통때문에 이런 훌륭한 시퀀스를 포기하다니!!
남들이 점심을 마쳤을 오후 세시, 한가로운 식당에 들어선다. 천천히 메뉴를 둘러보고는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를 하나 시킨 후 여유롭게 밑반찬을 맛보며 입맛을 돋운다. 본 메뉴가 나오면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 음식이 가장 예쁘게 나오도록 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먹방에 들어간다. 후루루룩 후루룩 퍽퍽 챱챱…. 뭔가 빠진 것 같은데…. 아… 소주가 빠졌구나.
운전을 싫어하지도 않고 드라이브 여행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장 아쉬운 것이 딱 요 시점이다. 맛있는 음식에 소주 한 잔의 기쁨을 아는 만큼, 출장을 갈 때도 지역 맛집을 알아 놓고 어지간하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 하는 편이지만, 얼마전 간 김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서울과 애매한 거리라 되려 대중교통이 불편한데다, 구석에 있는 업장을 찾아가려니 차를 끌고가지 않으면 너무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 했다.
얼마전 김포 출장에서 ‘타향에서 암사동 추억 소환한 떡볶이집’에 남긴 것 처럼 미친듯이 저렴한 분식을 즐긴 후 두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치니 갑자기 뭔가 허무해 져서 스마트폰의 웹 브라우저를 열었다. 김포 북변동 지역은 강화도와 가깝다 보니 운치가 있는 특별한 맛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검색 결과, 양촌읍 언덕배기 부근에 먹거리타운이 생성되어 거기 다 모여있더라. 걸쭉한 탕이 먹고 싶어 언덕배기 먹거리 타운의 ‘설반’으로 향했다. 간판을 보니 냉면과 신갈탕이 유명하다 하는데, 추가 검색 해봐도 냉면이 맛있다는 진심어린 멘트는 없어서 생전 처음 보는 메뉴인 신갈탕을 시켜보았다.
여기저기 신경쓴 깔끔한 인테리어. 보통 젓가락 봉지로 셀프로 만들어 쓰던 수저 받침이 디폴트로 있다. 잠시 기다리면 차려지는 깔끔한 밑반찬도 매력적이다. 강화도에서 가까운 지역 탓인지 순무 김치와 열무 김치, 조청 떡조림과 오징어젓 모두 깔끔한 외모(?)다.
열무 얼갈이 백김치 같은 왼쪽 김치는 무려 ‘와사비 김치’ 한 쪽 씹어 보면 매콤한 와사비 맛이 코를 톡쏜다. 조청 떡조림은 입에 착착 붙어서 두 번이나 리필해 먹었다. 잠시 기다리자 생전 처음 보는 메뉴 신갈탕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단 첫인상은, 얼큰한 쇠고기국밥에 갈빗대를 빠트린 모습이다. 저 상태에서 국물을 한 술 떠서 먹어볼 때부터 차를 가져온 후회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일단 고깃국이니 건더기를 분석해 보자.
맨 위에 올라온 고기… 처음엔 그냥 삶은 고기인줄 알았더니 간장 양념해 잘 구워낸 갈빗살이다. 한 쪽 먹어보니 살짝 달달한게 간이 기가 막히다. 와…
뜨거운걸 잘 못먹는 만큼 일단 갈빗대를 건져냈다. 살을 대충 발라내도 벌써 밑접시에 그득하다. 와… 이렇게 고기고기한 국물이라니… 이게 끝인줄 알았는데… 국물 속에는 양지와 사태살도 넉넉하게 들어있다. 국물 속을 휘적여보니 알곱창도 몇개 들어있다. 어째 내장탕 냄새도 올라오더라니….
밥 한술에 고기를 몇 개씩 얹어먹어도 고기가 줄지 않는다. 아, 소주를 한 잔 하고 자고 가자니 김포는 너무 기분이 안나고… 어쩌지? 이거 너무 소주 안주잖아!! 김포 여러분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김포에서 소주 한 잔 했다고 하룻밤을 자기에는 그 시간이 좀 아깝고. ‘설반’이 강화도에만 있었어도 그냥 1박 하는건데…. 아 정말 이 때 만큼 소주 한 잔이 아쉬웠던 적이 없다. 진짜 신갈탕에게 큰 죄를 진 기분이랄까.
신갈탕 한 그릇에 14,000원. 금액으로만 보자면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갈비탕과 고기 전골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질이 좋은 고기가 넉넉히 들어있어 돈 값을 한다. 무엇보다도 갈빗살로 시작해 갈빗대를 거쳐 사태 살과 얼큰한 국물로 이어지는 한 그릇의 스토리는 '소주'라는 두 글자와 너무 잘 어울리는 시퀀스다. 모든 흐름이 모두 소주를 향하고 있달까.
검색해보니 설반은 김포 양촌 먹거리 타운 한 곳 뿐이다. 다음번에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술 못하는 친구에게 운전을 시켜, 소주에 최적화된 유니크한 메뉴 신갈탕을 시켜 꼭 소주 한 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