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날에는, 맑은 돼지국밥이 제격 아닐런지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때가 있다. 하루 종일 찬바람이 불고 대기에 면도날이 서리는 겨울 한가운데 생각 나는 그거…… 한국 사람이라면 다 비슷할 것 같은데, 바로 따끈한 국물 요리다. 나는 고깃국물!
고깃국물이라면 보통 순댓국이나 돼지국밥이 떠오를거다. 물론 취존이지만, 날 서린 겨울에 탁한 국물은 난 별 이유 없이 손이 안 가더라. 대구나 복지리가 진짜 짱이긴 한데, 이건 잘하는 집 아니면 그냥 그러니까… 그런데 주 서식지인 강동구에 맑은 고깃국집이 생겼다네? 당연히 선빵 찍어야지!
‘온고’는 강동구청 부근에 있는 조그마한 식당이다. 주 메뉴는 돼지곰탕이다. 만둣국(오, 맞춤법 철저!)과 돼지불고기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돼지곰탕이 메인인 듯하다. 들기름 메밀전과 접시만두, 지짐만두 같은 것도 땡긴다. 그러나 저 같은 술꾼이 제일 땡기는 메뉴는 ‘냉제육 반 접시’!!
점심시간에 얼른 자리 잡고 돼지곰탕과 냉제육 반 접시를 시켰다. 먼저 기본 찬은, 클리셰 수준으로 흔하다. 섞박지에 양파절임, 산에서 자란 두메부추 무침에 소면이 끝. 정갈하긴 한데 빈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데 뭐, 국밥이 그렇잖아. 국물로 먹는 거니까?
내가 간 때가 점심 식사 시간을 지난 2시 20분경이라 그럴라나? 돼지곰탕보다 냉제육이 먼저 나왔다. 냉제육은 평양면옥 계열 같은 곳에서 보던 얇은 슬라이스가 아닌, 제법 두툼한 제육이다. 고기와 함께 두툼한 새우젓과 소량의 쌈장을 같이 낸다. 아, 그리고 겉절이 같은 게 나오는데, 이게 미나리 무침인가 보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종업원 분에게 물어보니, 미나리 무침을 얹고 거기에 쌈장을 조금 바른 후 새우젓의 새우 하나를 얹어 먹어 보란다. 음… 음? 음! 와… 이거 왜 이렇게 맛있고 부드럽지? 앞다릿살로 삶은 냉제육은 보통 뻑뻑하지 않으면 연육제를 섞어 물렁한데, 온고 식당의 냉제육은 딱 절묘하다. 적당히 식감이 있으면서 질기지도 않은, 딱 좋은 그 맛? 이거 큰일 났다. 한 7~8점이 나오는데 한 점이 거의 명함 한 장 정도 크기. 나 같은 입 짧은 녀석은 반 쪼개 먹으면 적당하다.
그렇게 소주를 두어 잔 하고 있는데, 드디어 메인 메뉴 ‘돼지곰탕’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를 알고 있나?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설렁탕은 사골 등을 위주로 끓이고 곰탕은 살코기 중심으로 국물을 낸다고 한다. 뭐, 지역마다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받은 건 분명 국밥이 아닌, ‘돼지곰탕’. 돼지곰탕을 처음 먹어본 게 합정동 ‘옥동식’이었는데, 온고 식당도 (내 평가로는) 같은 레벨이다. 게다가 두툼한 냉제육은 옥동식 귀싸대기 날리는 맛. 추가하지도 않았는데 기본으로 곰탕에 들어간 고기까지 넉넉하다. 아싸! 고기 풍년이다.
소면과 밥 반 공기를 말고 뜨끈한 국물을 떠먹으며 잔을 기울인다. 뜨끈한 국물이 냉제육의 고소한 맛에 새콤한 미나리 무침까지 받쳐주니 절묘하구나. 사장님, 여기 국물 좀 뜨끈하게 데워 주시면 안 돼요?
내 먹방 글을 꾸준히 본 사람은 알지 몰라도, 나는 술 마실 때 공깃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안 되겠다. 이 맑은 국물은 무조건 밥이랑 같이 먹어야 감칠맛이 살아나지?
온고 식당이 미쉐린 가이드를 받은 셰프 출신인지 아닌지, 사실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맛을 증명하는 건 결국, 음식이니까. 이런 건 내가 좀 잘 알잖아? 그 맑은 국물이, 절묘하더라. 부담스럽게 진한 것도 아닌데 돼지를 상징하는 육향은 분명하고, 비주얼은 밍밍한데 마늘과 생강 향이 그야말로 적당해서 딱 좋더라고.
돼지곰탕과 냉제육만 먹어 본 거라 다른 음식을 뭐라 평가하는 건 건방지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확실함. 온고 식당 사장님 돼지고기 다루시는 거, 정말 좋더라고. 자그마한 가게 규모도 내 취향엔 딱 적당하고 말이야. 당장 내일 점심은 온고 식당이다. 차디찬 오늘, 뜨끈한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바닥에 남은 미지근한 뚝배기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그만큼 따뜻하진 않지만
울지 않을 수 있어
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국을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말간 국물에 켜켜이 담아
언젠가 문득 너무 힘들 때면 퍼 마실 수 있게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
이 국을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이 국을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덧1) 아... 다들 알지? 이건 브로콜리너마저 <유자차> 우라까이인 거...
덧2) 처음이다. 이 날, 오링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