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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an 08. 2021

찬 바람 불고 눈 오면 생각나는 그곳

천호 이자카야 아키노유키

눈 오면 개도 뛰어나와 눈송이를 맞는다는데, 2020년 연말부터 집에 콕 박혀 있으면서 눈 속의 강추위를 보고 있으려니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갑갑하다. 이럴 때 잘 어울리는 가게를 한 번 떠올려 보는 걸로라도 이놈의 역마살을 달래는 수밖에. 

코로나 19 방역으로 설치한 가림막도 위트 있다. 사장님 한 분이 정말 저렇게 생김 주의

‘가을의 눈’이라는 뜻의 아키노유키는 길동 우체국 부근에서 문을 열었던 이자카야다. 처음에는 알음알이로 단골들만 찾는  테이블 네 개정도의 작은 공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입소문이 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천호동으로 가게를 옮기게 된다. 지금은 단층집 두 개를 합친 정도 큰 규모의 강동 지역을 대표하는 이자카야로 뿌리내렸다. 

원고가 안 풀릴 때 이렇게 나와 하라는 일 안 하고 술만 작살냈지

특히 '다찌'라 부르는 바는 한 구석에서 혼술 하면서 책을 읽거나 음악 듣기 딱 좋다. 하던 작업이 막힐 때는 맥북에어를 가지고 아키노유키 다찌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글을 쓰다 친구를 만나 술과 안주를 원고료만큼 쳐마신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친해진 사람들도 꽤 있지 아마...


아키노유키는 여러 이자카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스키야키, 나가사키 짬뽕 등 다양한 일본 요리를 선보인다. 하지만 다른 집과는 분명히 다르다. 사장님이 일본 여행 중 요리에 반해 눌러앉아 배운 만큼 일본 현지에서 먹는 듯한 진한 일본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키노유키의 찐 매력은 혼술 하기 딱 좋은 안주 메뉴들이다. 

기본 안주가 일본의 오토시 문화를 닮았다. 아키노유키는 고양이라는 게 함정?

일단, 일본 선술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오토시’를 재현한 게 재미있다. 아키노유키의 오토시는 곤약 조림이다. 곤약과 꽈리고추, 메추리알을 간장에 조린 아키노유키의 오토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안주가 되어준다. 일본과는 달리 아키노유키의 오토시는 무료. 추가해도 따로 돈을 받지 않지만 메추리알은 추가로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베이컨 토마토 꼬치. 어디에나 있는 메뉴긴 하지만 잘 구우니 이리 촉촉하고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토마토 베이컨 말이. 적당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토마토가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게 아주 적당히 익은 게 딱이다. 토마토 베이컨 말이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염통이나 네기마, 닭껍질도  아주 근사한 맛이다. 

보이는가, 이 소주를 부르는 고소한 냄새가...

기본기가 탄탄하다 보니 비싸거나 특이한 재료 꼬치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이것은 대창 꼬치. 간장 소스가 고소한 대창 기름과 어울려 짭짤하고 느끼한 게 소주 안주로 딱! ‘칼로리는 맛 지수’라 그랬나? 사이사이 끼워진 양파마저 달달하니 맛있다. 

'뭐지?' 하고 시켜봤는데 의외로 너무 맛있다. 안에 고명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메뉴에 꽈리고추 꼬치가 있어 시켜봤는데, 오?  꽈리고추에 소스 바른 후 굽기만 한 게 왜 이리 맛있지. 대창의 느끼한 맛을 한방에 잡아주니 아주 좋다. 

사장님이 '손님이 없어 심심하다'며 무심한 듯 툭 던져주고 가신 굴 꼬치. 굴을 잘 먹지 못하지만 이건 맛있게 먹음

아키노유키에서는 요즘 제철인 굴도 꼬치 메뉴로 낸다. 뻑뻑하게 구운 게 아니라 불맛만 내고 안쪽은 촉촉한 굴의 육즙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간장 소스에 파까지 더해지니 비린 것 잘 못 먹는 나도 맛있게 먹었다. 

배부를 때 술도둑, 모찌리도후

만약 이것저것 딥한 안주 대신 가볍게 한 잔 하고 싶으면 모찌리도후도 좋다. 이 녀석은 꼭 치즈 같은 맛이 나서 치즈 두부라고 불리지만 고구마 전분과 참깨 등으로 만든 것이다. 모찌리도후 하나면 맥주 두 병 정도는 그냥 작살낼 수 있다.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문을 좀 일찍 열어 오후 3시부터 영업한다고 하니 낮술 하기는 딱 좋은 시간이네. 사장님은 힘드시겠지만 요즘 방역 문제로 손님도 별로 없어 한갓지고 좋다. 며칠 감금생활의 탈출구. 오늘은 여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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