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와 향기, 바람과 햇볕으로 먹고 들어갑니다
갑자기 뼈가 시리게 추워진 겨울의 한가운데서 익선동 길거리를 걷다, 문득 따스한 기운이 그리워질 때 들어가기 딱 맞는 곳을 발견했다. 귀여운 식빵 그림 간판을 지나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채광 좋은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밀토스트’는 언뜻 카페처럼 보이지만 식빵과 프렌치토스트를 주력으로 하는 브런치 카페다. 코로나 19 2.5단계로 테이크아웃 빼고 실내 손님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커피 전문점 사장님들은 ‘밀토스트’처럼 좌석별 거리두기만 하면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 브런치 카페를 보고 불합리하게 느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카페 노매드로 일하는 나 같은 프리랜서들에게는 가뭄의 단비다.
커피만 한 잔 하려다 마침 출출해 빵을 한 번 시켜본다. 식빵은 그냥 만두 찜통 같은데 담아 스팀에 쪄서 나오는 것이고 수플레 토스트는 우리가 흔히 아는 프렌치토스트다. 별생각 없이 블루베리 크림치즈 토스트를 주문했다.
익선동은 한옥 밀집지역이어서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한옥을 최대한 보존하고 가로변에 접한 곳에서는 건물을 5층 이상 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여기 상권은 있는 한옥을 그대로 두고 개조한 집들이 많은데 밀토스트 역시 기존 한옥의 마당 부분을 그대로 살려 지붕을 통창으로 막고 그 부분에 바와 주방을 두었다.
주문이 끝나야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다 보니 시간이 붕 뜬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불멍도 아니고 물멍을 때리다 보니 햇볕이 참 좋다. 히야… 여기 햇살 맛집이네. 천장에 하늘하늘 커튼을 달아놓아 히터 바람에 살랑거리고 드립 커피 향이 솔솔 나니, 꼭 봄날 어느 카페 마당에서 바람맞고 있는 기분이다. 가게 전체에 잔잔히 퍼지는 누자베스 노래도 좋구만.
이윽고 블루베리 크림치즈토스트 등장. 보기에 그럴싸하다. 왼쪽 위에 보이는 감자 수프는 자리를 이용하려면 무조건 주문해야 한다는데 뭐 가격이 2,000원 밖에 안 해서 불만은 없음. 토스트가 양은 적지만 달걀물을 푹 빨아들여 촉촉이 익어서 그런지 엄청 부드럽다. 감자수프는 조금만 더 따듯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맛은 괜찮다. 토스트 두 쪽을 다 먹은 후 블루베리 크림치즈 케이크를 먹으려니 너무 달고 느끼하더라. 근데 생각해보니 그게 크림치즈 케이크가 아니라 토스트에 발라먹는 그냥 크림치즈인 것 같기도 하고. 좀 달고 느끼해서 드립 커피를 한잔 추가로 주문했는데 커피 맛도 괜찮다.
오랜만에 대부분 가게가 후줄근한 낙원상가 근처에서 깨끗한 분위기에 따뜻하게 커피도 한잔 마시고 기분 좋게 배도 채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밀토스트는 토스트나 커피, 식빵도 맛있지만 여기는 ‘햇살 맛집’이다. 중앙 통창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나른하게 커피 한잔 마시며 책 읽고 싶으면 한 번 찾아보자. 위치는 낙원상가 부근 익선동 입구에서 멀지 않은 거리.
단,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말은 못 하겠다. 혼자 블루베리 크림치즈 토스트에 커피 한 잔, 감자수프를 먹었는데 13,000+6,000+2,000=21,000은 좀 비싸긴 하네. 토스트 한쪽 크기가 음…. 편의점에서 파는 스니커즈 하나보다 조금 큰 정도. 든든히 먹고 싶으면 토스트보다는 식빵이 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