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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an 01. 2021

새해 첫날, 대충 툭툭 끓여먹는 떡국 레시피

엔딩에 라떼도 한 잔 준비했어요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이그랬다,  습관이란게 무거운거라고. 몇십 년째 맞고 있는 새해. 매번 반복되어 몸에 배어있는 관습, 거꾸로 하면 습관은 생각보다 집요하다.  농축 탄수화물 덩어리에 덤으로 나이까지 한 살 먹게 되는 떡국이 뭐가 좋다고, 왠지 이걸 안먹으면 새해 기분이 나지 않는다. 나가서 간단히 사먹으면 뚝딱이지만 요즘 시기도 그렇고 또 집이나 방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 새해를 맞으며 나이까지 쳐먹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그럼, 간단한 집 떡국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털어본다.

첫째는 떡. 이건 우리집 냉장고가 아니라 옆집을 털어도 안나올 수 있으니 본격적인 떡국 시즌인 한겨울에는 적당한 양을 사둔다. 한두끼 먹은 다음은 금방 상하니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먹기 전날 “찬 물에 담궈” 해동하고 그 채로 놔둔다. 이렇게 두면 떡이 적당히 불어서 국물에 오래 안끓여도 되고, 탄수화물이 국물로 배어나와 텁텁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둘째는 만두. 이건 개취지만 또 그게 빠지면 허전한 분들이 있으니…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냉장고에 흔히 들어있는 건 아니니 냉장고에 비비고 만두 한 봉쯤 넣어두자. 아니면 집 냉장고를 털어서 가져오던가. 집만두라면 무조건 냉동 안하고 상하기 전에 먹는게 좋지만, 자취생이라면 많은 양을 한방에 털 수는 없을테니 얼리는 수밖에. 냉동할 때는 삶지 않은 생만두건 삶은 만두건 최대한 접시 같은데 펼쳐서 서로 붙지 않도록 냉동해 보관하자. 그냥 한데뭉쳐 냉동하면 나중에 만두가 아니라 완자와 밀가루 수제비를 먹게 되는 수가 있다.

이정도만으로도 뭐가 나오긴 한다. 우리에겐 MSG가 있지 않나

육수 재료는, 뭐 시판용 사골 육수 같은게 있으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그게 없다면 만들어야지. 지금 이 목록에 적힌 것은 다 때려넣어보자. 중요도는 뒤로 갈 수록 줄어든다. 쇠고기, 멸치, 닭뼈, 파, 다시마, 버섯 등등. 닭뼈가 좀 뜬금없겠지만, 현명한 자취생이라면 치킨을 먹은 후 남은 뼈 정도는 깨끗이 씻어 냉동해 두는 것이 상식. 뭐 순서 같은거도 있지만 그냥 다 때려넣자. 가스나 전기 요금 걱정 없으면 팍팍 오래 끓이는게 짱이지만 보통 30분 정도면 어느 만큼 다 나온 셈. 아, 다시마는 물이 끓으면 빼서 물로 잘 씻어놓는다. 국간장이 있으면 좀 싱거울 정도로 간을 맞춰두자.

왼쪽의 치킨스톡이 있으면 제일 좋지만, 미원도 충분하다

육수가 끓는 동안 찬장을 뒤져보자. 누구나 가슴 속에 삼천원쯤 있는 것처럼 주방에 MSG 한 두 종류쯤 있게 마련이다. 제일 좋은게 치킨스톡이긴 하지만 미원이건 다시다건 국물 맛 봐가며 넣어준다. 조미료를 넣으면 몸에 안좋다 뭐다 말이 많지만, 감칠맛이 증가하면 소금간을 많이 할 필요 없어 염분 섭취도 줄게 된다.

난 여러명이 먹을거라 흰자 노른자 분리했지만 혼자서는 굳이 그럴 필요 없음 주의

이제부터는 옵션. 육수 우려내는 동안 달걀이 있다면 하나쯤 깨서 지단을 만들어보자. 지단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달걀 부침이다. 지단 만드는 법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단, 노른자 흰자 분리하네 마네 하지 말자. 1인분 만들거면 계란 하나를 그거 나눠 부치는건 좀 웃기기도 하고 번거롭다. 그냥 확 섞어 계란물을 만들면 적당히 노랗게 나온다. 지단은 불을 올려 익히기 보다는 팬을 뜨겁게 달군 후 불을 꺼서 잔열을 이용해 익히자.  꿀팁은 달걀물을 붓고 불을 끈 후 뚜껑을 닫아주는 것. 한 1분쯤 기다린 후 뒤집고 불을 10초 정도 켰다 꺼면 탄탄하게 잘 익는다. 이게 덜익으면 썰때 다 뭉개지거나 지단이 들러 붙으니 주의. 다 익은 다음엔 한김 식혀 잘게 썰어준다. 안주나 밥반찬으로 먹던 양반김 같은게 있으면 개꿀.

그럴싸하지 않냐고 자랑할라다보니, 아... 왼쪽에 지단 정리를 안했네

이제 다 됐으니 떡국을 끓이기만 하면 됨. 건더기를 건져낸 육수를 팔팔 끓여 떡을 넣고 3분 정도 끓인다. 냄비가 작으면 떡이 냄비 바닥에 들러붙을 수 있으니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여준다. 여기서 주의할점. 만두는 같이 넣어 끓이면 안됨 주의. 생만두일 경우 만두피에 묻은 밀가루 때문에 국물이 텁텁해지고 흐려진다. 삶은걸 냉동한 경우 그냥 넣으면 피가 갈라져 터지는 바람에 수제비 완자국으로 변신할 수 있다. 생만두라면 따로 물을 끓여 삶아야 하지만 시판 냉동만두거나 삶아 얼린거라면 물에 한번 헹궈 접시에 올린 후 전자렌지로 2~3분 정도 돌려준 후 다 끓인 떡국에 얹어낸다. 이제 준비해둔 고명 올리고 후춧가루 톡톡 뿌려 먹으면 끝. 아, 고생한 나님을 위해 먹기 전 예쁘게 사진 찍어 인스타 인증 준비한 후 숟가락을 들이대길. 어머나, 고명으로 쓰려고 빼놓은 다시마를 잊었네. 얇게 썰어서 얹어주면 오독오독 식감이 괜찮지만 까먹었으면 그냥 버려도 아까울 것 없음.

세상이 너무 정직과 성실, 열정과 현실을 강요하는데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말란 말은 아니다. 영화 ‘스물’의 강동우는 어려운 살림에 재수까지 해가면서 노력하던 애니메이션 학과 재수를 포기하고 삼촌네 공장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 결정을 뭐라고 하던 차지호(김우빈 분)와 김경재(강하늘 분)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이것이 로그 그래프. 뒤로 갈수록 급격히 올라가지 않나

2배로 노력하면 결코 2배로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노력과 그 성과는 기울기가 일정한 선형 그래프가 아니라 어느 정도를 지나면  기울기가 급격히 무한대에 수렴하는 로그 그래프다. 50% 노력하면 50% 성과를 낼 수가 있지만, 90% 노력해도 성과는 60~70%밖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 300% 노력해 99%가 될 수는 있지만 그러면서 버린 내 노력과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다.


새해 아침 새벽 댓바람부터 떡국 한 사발 끓여놓고, 적당한 노력에 적당한 포기와 만족이 오히려 최고의 효율과 자기만족을 줄 수도 있고, 그것은 선택일 뿐  인생에 죄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거봐. 밑도 끝도 없는 냉장고 털이로도 얼추 먹을만한 떡국이 나오지 않나. 며칠 전 내가 한달어스 한달쓰기 단톡방에서 내가 뭐라도 된다고 자랑스레 꼰대질을 한게 생각난다.


부족한 글이란건 없어요. 좋은 글과 나쁜 글, 아직 안 쓴 글만 있을 뿐.


새벽에 갑자기 떠오른 떡국 타령으로,  글이 짠지 싱거운지맛있는지 맛없는진 몰라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대충 3,000자가 넘는 에세이 한 편이 탄생했다. 누가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하트라도 눌러주면 그저 즐겁겠지. 그러니 대충대충, 적당히 살자. 남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사회의 시선이나 남들의 눈총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건 바로 당신이다. 역시 새해 첫날은 꼰대질에 라떼 토크가 제격이네. 올 한해 모두 대충대충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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