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Mar 02. 2021

글팔이에서 작가로 진화하기까지

이정민 작가, 두 달 동안 수고했다. 앞으로도 달리자

이전 1월, ‘한 달 쓰기’ 프로그램에서 과음으로 아깝게 하루 글쓰기를 놓치는 바람에 타이틀 쟁취에 실패한 전업 글팔이 이정민. 이제 막 두 번째 도전인 ‘한 달 글쓰기 훈련소’의 마지막 원고 인증을 앞둔 그의 얼굴은 의외로 덤덤하더라. 글을 써서 생계를 연명하고 있는 소위 전업 작가. 그러나 그는 그 호칭을 한사코 거부하고 ‘글팔이’로 불러달라고 하대. 그 이유가 되게 염세적이야. 


내 이름 걸고 글을 쓰지도 않는데, 작가는 무슨...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 번도 나를 드러내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문장을 써 본 일이 없었거든. 
성공했던 실패했던 글로 생각을 드러내고 나만의 어젠다를 세팅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저 생계 수단으로 글을 썼는데 무슨 작가야. 글팔이지.


그렇게 글에 염세적인 그가 한 달 내내 매일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아마도 그녀석이 가진 작가적 자존감의 결핍 때문일거야. 세월이 흘러 경력 10년 차를 넘어서는 중견 글팔이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름도 모르는 고스트라이터 같은 글팔이 이미지를 이제 좀 벗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 그런데 초기 몇 개월은 노느라 바빴고, 그 이후 생각보다 여기저기서 일이 굴러들어 와 바빠지면서 또 지 글을 안쓰고 있더라고. 


쉬는 시간에 내 글 쓰면 일하는것 같잖아.
사실 그렇잖아. 꼭 이름을 날려야 작가도 아니고…


이노무 안빈낙도! 그런데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박살 낸 것도 모자라 그런 그의 낙천적인 생각도 박살냈더라고. 코로나 19 사태로 산업도 얼어붙는데 홍보라고 멀쩡하겠어. 홍보팀 스타일 글 쓰기가 전공인 그 녀석의 일은 젖은 빨래를 탈수기에 10분 돌리고 햇볕에 말린 것처럼 바짝 말라버렸어. 그래도 우리가 잔고랑 일이 없지 시간과 가오는 넉넉하잖아? 진짜 힘드니 이녀석이 드디어 각성했더라.  


작가로서 내 이름이 없으면, 영원히 이 상황은 반복되겠구나


그러나, 롤러코스터 언니 오빠들이 괜히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노래한 게 아니지 않나. 10년도 넘게 남이 짜주는 스케줄에 따라 남이 요청하는 주제의 글만 써온 글팔이. 자발적으로 주제를 잡고 계획을 세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대. 하긴.... 남들은 받고 싶어서 애써도 잘 안 되는 브런치 작가가 덜컥 되어 놓고도 2년을 글 한 편도 안 쓰고 방치했으니… 그러던 중 SNS 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달어스’ 서비스가 그의 눈에 띄게 돼. 이게 과연 이정민 글팔이를 ‘이정민 작가’로 업데이트시켜줄 수 있을까?


그가 첫 번째로 신청한 서비스는 ‘한달 쓰기'야. 간단히 말하자면, 한 달동안 무슨 글이건 쓰라고 푸시하는 한달어스의 서비스지.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같은  한달 쓰기 기수 멤버들이 모인 단톡방에 초대되어 매일 ‘오늘 내에 글을 인증하라’는 한달 쓰기 리더의 압박을 한 달 동안 받게 된다네. 


사실 글팔이 녀석은 생각보다 게을러. 원고료나 마감이 없으면 일이 척척 늘어지지. 하지만 원고료가 아니어도, ‘마감’을 누군가가 정해주고 푸시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 ‘매일 한 편씩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고 그걸 누가 푸시하니 뭐라도 꺼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더라고.


맥주에 한껏 취해 하루 인증을 까먹는 바람에 아깝게 하루를 놓쳐 완주 금메달을 받지는 못했지만, 글팔이 녀석은 한 달 동안 스물아홉 개의 글을 브런치에 쏟아냈어. 놀랍지 않아? 누가 돈도 안주는데. 이때 즈음 나와 맥주를 한 잔 하며 이렇게 얘기하더라고. 


원고료도 받지 못하는 글을 이렇게 열심히 꾸준히 써본 건 처음이야


한달 쓰기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도 하루 걸러 하나 정도 글을 쓰는 그를 보니, 이제는 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더라. 가만히 보니, 건수 없는 날에는 일부러 뭐라도 먹은 다음 글을 쓰기도 하더라고. 재미가 붙었는지 그는 한달어스의 새로운 프로그램, ‘한달 글쓰기 훈련소’를 또 신청하더라. 아니, 10년 넘게 글을 쓴 녀석이 무슨 훈련은 훈련? 그러나 그도 다 생각이 있더라고. 


클라이언트는 그 글이 홍보 목적에 맞냐만 보거든. 읽는 사람을 배려하기는 하지만 그게 더 먼저야. 
여기서 글 쓰면서 새로 테마 잡고 글 쓰는 훈련도 하고 일반 독자들이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가도 받아보고 싶어.


‘한달 글쓰기 훈련소’는 기본적으로는 ‘한달 쓰기’와 그 구조는 비슷해. 다른 점이라면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차지한 리더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글쓰기 주제를 제안하고 그에 따라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녀석 갑자기 ‘나 글로 밥 먹고 살아요’라며 떠벌이고 다니기 시작하더라. 왜그러지?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차치하더라도 그럼 사람들이 그녀석 글을 더 꼼꼼히 볼텐데... 그런데 그 녀석, 욕이 먹고 싶었대. 


한달 쓰기에서는 사람들이 착해서 그런가? 아무도 '이 부분이 이상해요', '이 부분이 잘 안읽혀요' 등등 평가를 해주지 않더라고. 그런데 내가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알게되면 평가가 더 냉정해질 것 같더라.

프로그램을 슬쩍 훔쳐보니, 중간에 서로의 글을 평가해 주는 시간도 있더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한 단톡방에 있는 사람한테 비판적인 글을 달기는 쉽지 않지. 게다가 다들 글들을 잘 쓰더라고. 이 글팔이 녀석은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대로 문체를 휙휙 바꿔가며 줄줄 쓰는건 잘하는데, 그게 뒤집어 말하면 뭔가 사람을 잡아끄는 '지 스타일이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거든. 뭔가 자극을 좀 받고 싶었나봐. 그래도 댓글 통해 다른 작가들과 소통도 하고 남의 글도 보면서 이 녀석도 생각 많이 했나보더라고.


어쨌든 결국 이 녀석. 한달 글쓰기 훈련소의 일정 내내 하루 하나 글 인증을 결국 해내고야 말았어. 뭐 어찌 보면 글 써서 먹고사는 놈이 당연한 일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좀 뿌듯하고 그러네. 잠깐 이 녀석과 이야기해 보니, 이번 인증을 모두 마치고 자기에게 작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 지금부터는 그 녀석이 직접 말하고 싶다네. 그래 이제 니 할 얘기 해라. 수고 많았다. 


 ‘글밥 16년, 처음 써보는 내 이야기’를 시작으로 두 달 좀 넘는 시간 동안 66편의 글을 써냈습니다. 이진선 작가님이 리드를 해주시며 다양한 주제를 던져주신 덕에, 저도 무게감을 가지고 한 달 동안 긴장하며 글을 쏟아냈던 것 같습니다. 제 글 읽어주시고 하트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12기 한달 글쓰기 훈련소 여러분과 이진선 작가님 고맙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뭐 제 글이 크게 늘거나 주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10년 넘게 써온 글 톤이 뭐 크게 바뀌기야 했겠습니까? 하지만, 이제 좀 ‘글팔이’라는 내가 스스로 붙인 내 타이틀을 한쪽으로 치워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를 제 스스로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이 대단해서는 아니고요.


2017년, 처음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면서 만들어놓은 명함입니다. 부끄러워서 사람들에게 잘 돌리지 못했어요. 제가 저를 작가라고 하기가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좋아하는 걸 하지 말고 잘하는 걸 해'라는 글에서 밝힌 제 소신처럼 좋아서 글을 써야 하는데, 전 계속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거라 글을 쓴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더라고요. 별로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하지만 이제, 제가 좋아해서 글을 쓰는 '작가'라고 당당하게 제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듯합니다. 내 글을 막 몇만 명씩 읽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받거나 하지 않아도 이제는 나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겼달까요.  한달 글쓰기 훈련소 여러분 외에도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여러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친해져서 조금씩 대화도 나누고 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매일 글을 쓰려고요. 아마 또다시 한달어스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기는 할 텐데, 이제 한달 글쓰기 훈련소 프로그램이 끝나더라도 여러분, 가끔 제 브런치와 SNS 들르셔서 제 글 읽고 욕도 해주시고 그래 주세요. 한 달 동안 모자란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나 왜 어디 떠나는 것처럼 인사를 하니…)

작가의 이전글 사운드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면, Steely Da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