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Apr 03. 2021

영화 스토리를 드라마처럼 죄다 묘사해야 하나?

글쓰기 모임 동료 작가의 글을 읽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철학을 떠올렸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 Duelist>에 푹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이명세 감독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성공으로 한껏 자신감이 올라가는 동시에 자본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화가 방학기 의 ‘다모 남순이’를 바탕으로 한 사극 느와르 <형사:Duelist>를 찍게 된다. 

아... 이 대결을 실제 영화로 봤을 때는 정말 미친 듯이 아름다웠는데.. 실제로는 뮤비냐고 엄청 비판을 받았더랬지. 거참 사람들 하고는...

<형사:Duelist>는 자객 ‘슬픈 눈’과 다모 남순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다룬 영화이다. 사건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남순과 슬픈 눈 둘은 자꾸 새로운 감정이 생기고,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갈등은 더해진다. 놀랍게도, 영화의 스토리는 이게 전부다. 


개봉한 후 팬덤은 둘로 나뉘었다. 이명세 감독의 끝을 모르는 미장센에 대한 집착과 , 2005년 당시로는 병적이자 무리수인 4K 조명을 잔뜩 도입해 화면의 밝기와 계조를 확 높여  ‘한국 영화는 어둡다’는 편견을 한 방에 종식시킨 <형사:Duelist>는 스타일리시한 화면 트랜지션과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화려한 컬러, 독특한 미장센으로 마니아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여윽시 강동원 화보집 소리 들을만 함

당시 유행하던 왕가위 식의 점프컷과 프레임 드롭 기술 역시 영화 관계자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사랑이라기보단 브로맨스처럼 느껴지는 하지원과 강동원이 정말 미친 듯이 멋지고 예쁘게 나왔다는 것도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 


하지만 다소 난해한 전개와 여기저기 생략된 스토리라인으로 이 영화는 그리 대중적 인기를 얻진 못했다. 심지어 이 영화는 ‘강동원 화보집 이어 붙인 거냐’, 무슨 1시간 45분짜리 뮤직 비디오냐’라는 말과 함께 미학적 극단을 달렸던 그 업적과는 달리 ‘스토리가 없다’며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들어야만 했다.  


얼마 전 이명세 감독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팟캐스트 <시네타운 나인틴>에서 <형사:Duelist>에 대한 악평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중이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그건 제 불찰이겠지요.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라며 이렇게 얘기했다. 


영화는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 시간 제한이 있는 매체입니다. 
거기에 모든 내용을 다 때려넣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죠
그런데 왜 영화의 문법을 ‘드라마의 문법’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 일견 맞는 말이다. 영화는 한 편의 시와 같다. 예를 들자면, 내 이야기를 100페이지가 넘는 자서전으로 이야기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편 에세이가 된다면 그만큼 표현을 축약하고 생략해 자서전보다 적은 분량에서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시로 쓴다면 기껏 해야 열 줄 전후의 문장에 모든 것을 넣을 수 있도록 압축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론도 이와 같다. 길고 긴 스토리를 지지부진하게 늘어놓을 거면 연작 드라마로 만들지 그걸 뭐하러 드라마로 만드냐는 거지. 

결국 둘이 이렇게 뮤비샷도 찍고... 그럴만 하네. 

이명세 감독은 그의 특기인 다양한 미장센과 감각적인 트랜지션으로 일견 빈약한 스토리의 빈 곳을 채우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화면과 조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시콜콜하게 모두 설명한다면 그게 무슨 재미겠나. 그 빈 곳은 감독이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와 미장센, 그리고 감상자의 상상으로 채우는 것이 재미 아닐까?


오늘 글쓰기 모임의 과제는 크루의 글을 읽고 그 감상을 나눠보는 것. 영화처럼, 당연히 글 몇 개를 읽고 그를 온전히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걸 통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와 현재 마음가짐 정도는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자체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브런치 임복치 작가님의 ‘아침 일기와 저녁 일기의 차이’와 ‘새벽형 인간은 다음에 될래요’를 읽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다짐하거나, 저녁에 지쳐 쏘주 한 잔 하면서 내 스토리를 털어놓는 작가, 그러고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내가 왜 새벽에 일어나!’ 고민하고 원망하는 임복치 작가의 모습이 (실례지만) 귀엽고도 짠했달까. 특히 알람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그랬거든. 나도 매일 알람을 7시 45분에 맞춰놓고 7시 30분에 눈을 뜨는 극성맞은 인간이니까. 


어쨌든 두 글을 읽고 작가님이 안식년을 맞아 하루를 살아내는 일상과 하루를 맞이하는 자세, 그 시간과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어떤 사람이 자신을 나타내는데 ‘봉테일’ 봉준호 감독처럼 모든 디테일을 다 짚어가며 노출시킬 필요는 없지. 그를 알아가는 입장에서도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핀셋 수준으로 짚어가며 탐구하고 알 필요도 없다. 그가 노출하기를 원하는 그 이상을 굳이 들여다 보려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니까. 뇌내 망상으로 팩트를 부풀리거나 왜곡하지만 않는다면, 몇 가지 언행과 글줄, 행동양식을 읽어내 흥미를 느끼고 그와 소통하는 재미를 느끼면 그만 아닌가? 


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가 쓰는 글에는 제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응?) 그러니 굳이 과장하거나 부풀릴 필요 없이 그냥 '이게 쟤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 제가 쓴 글 그대로 행동하니까요. ㅋㅋㅋㅋ



작가의 이전글 우리에게 닭도리탕과 우동, 오뎅을 허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