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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Apr 01. 2021

우리에게 닭도리탕과 우동, 오뎅을 허하라

일본말 적극 쓰자는게 아니라 기준을 상식적으로 명확히 하자는 의미

이제 한국 고유의 스타일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아침에는 샌드위치, 점심은 우동을 먹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는 코스모폴리탄 적인 생활이 오히려 평범한 게 되어버렸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내 입장에서도 가능한 한글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립국어원의 정책은 좀 이상하다.   기준이 심히 오락가락하기 때문. 이런 내용에 흥미가 있다면, 아래 예시를 한 번 읽어보자.


어제 사놓은 치킨까스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상쾌한 아침. 뭔가 손이 좀 허전하네. 아, 스마트폰을 놓고 왔구나. 얼른 뛰어들어가 폰을 가져와 출근길에 나섰다. 샌드위치를 조금 먹어서 그런가? 회사 앞 노점의 오뎅에 눈이 가서 두 꼬치를 게눈 감추듯 빼먹고 나니 든든하네.

이래저래 아침 회의와 오전 업무를 마친 후 오늘 구내식당 메뉴는 닭도리탕. 그런데 왠지 오늘은 사무실에서 밥 먹기가 싫어서 회사 부근 일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날도 추워서 그럴싸하게 밀푀유 나베를 먹으려 했지만 다들 바빠서 구내식당에서 먹는다니 뭐.. 그냥 간단하게 튀김우동을 먹어보기로 했다. 따끈하게 김이 나는 우동에서 튀김을 얼른 건져내어 와사비를 싹싹 푼 간장에 찍어먹은 후 튀김 조각이 풀어진 우동을 후루룩 하니 머릿 속까지 뜨끈해지는 기분이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오늘 하루 잘 보내보자는 둥 간지러운 생각은 들지 않지만 배 든든히 채우고 오늘 저녁 친구들과 와인 파티 때까지 잘 버텨보자.



국립국어원은 외국에서 사용되던 말이 한국으로 넘어와 한국어처럼 사용되는 것을 ‘외래어’로 정의하고 있다. 그 기준은 대체어의 존재 유무에 있다. 예를 들어 ‘Car’는 자동차라는 대체어가 있어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다. 하지만 ‘Bus’는 달리 한국어로 대체할 단어가 없기 때문에 외래어 ‘버스’로 정의하고 실생활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기준은 유독 일본어에만 그 기준이 빡빡하다.


한국과 일본이, 특히 요즘처럼 일본이 미운 짓만 하는 시기에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쓰이는 일본어의 잔재는 곱게 봐줄  없다. 이전 한글 블로그 ‘온한글 기고했던  ‘<간지나게 피트한 초절정 유행의상,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에서 썼던 대로 ‘간지’, ‘피트같은 왜색 단어는 절대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무조건 일본어라고 질색부터 하는건  생각해볼 문제다. 별도의 대체어가 없으면서도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일본의 것들을 어거지로 한국어로 대체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굳이 일본말인지 정확하지도 않고, 볶지도 않는 요리를 '닭볶음탕'이라 쓸 필요가 있나? 아, 최근 골목식당에 나온건 닭볶음탕이라 할 만하다 웍으로 들들 볶으니까

일단, 많이 논란이 되는 닭도리탕부터 문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닭도리탕이 일본어의 잔재가 남아있는 단어라고 단정짓고 1996년부터 그것을 순화한 ‘닭볶음탕’만 쓰라고 고시를 내렸다. 근거는 ‘도리’가 새 鳥를 일본어로 읽었을 때 발음인 ‘도리’라 이것이 일본식 단어라는 것. 그 말을 그대로 해보면 닭도리탕은 ‘닭새탕’이 되는셈. 굳이 새를 뜻하는 단어 두개를 붙였다기에는 좀 억지스럽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게 '족발'이나 '역전앞', '살아생전', '처갓집' 같은 말도 쓰이는 만큼 말이 된다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게다가 ‘도리치다’라는 우리말은 ‘무엇을 잘게 쪼개다’라는 뜻으로, 이에 따르면 닭도리탕은 닭을 잘게 칼로 쳐내 끓인 탕이니 훨씬 해석이 자연스럽다. 애초에 끓이고 쪄내는 찜에 가까운 닭도리탕의 대체어가 닭볶음탕이라니. 좀 억지스럽지 않나?


우리가 반찬으로, 음식으로, 떡볶이에 넣어 자주 먹는 오뎅도 국립국어원에서는 ‘어묵’으로 순화해 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밝히는 어묵의 정의 자체가 수상하다.


이게 뭐야...


애초에 국립국어원에서도 오뎅을 일본 고유의 음식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굳이 이전의 한국에서는 있지도 않던 어묵, 생선묵이라는 용어를 쓰라고 강제하는걸까? 심지어 꼬치, 꼬치 안주는 또 뭐지.

우동도 ‘가락국수’라고 쓰고 있는데, 애초에 한국 음식에는 굵은 면을 쓰지 않는데그걸 굳이 가락국수로 순화해 부르라니 이건 단순한 차별이라 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와사비의 순화어라 이야기하는 고추냉이는, 아예 와사비와는 다른 식물이다. 한국에서는 예전에 아예 쓰지도 않았고.

오뎅과 우동은 안되면서, 규동은 괜찮은건 좀 웃기잖아

그럼 일본 음식은 전부 한글로 대체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냄비에 끓여먹는 전골 요리인 나베나 일본식 덮밥인 규동, 일식 술집을 뜻하는 이자카야 같은 단어는 아예 그런 말이 없고 일반인들도 별 이질감 없이 잘 쓰고 있다. 이런 단어들은 본격적으로 일본 문화가 개방된 2000년 이후 들어온 것들. 이러한 요상한 반일감정은 이전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엿볼 수 있을 듯 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총 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인 만큼 FIFA는 공평하게 한국에서 한 게임, 일본에서 한 게임을 치를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일본인이 절대 우리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라


월드컵 같은 경기는 국가간의 외교 무대와도 비슷한 만큼 이런 감정적인 대응은 그리 옳지 않아보이기는 개뿔, 열받으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이 덕에 한국 국가대표는 꼼짝없이 일본 경기장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 두 경기를 뛰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은 ‘지면 모두 현해탕에 빠져 죽어라’며 악담을 했다고 한다. 이런 개판 상황에서 일본을 꺾고 본선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도 대단하지만, 당시 반일 감정으로 인해 그전부터 한국에 퍼져있던 일본 음식들과 닭도리탕 같은 우리말이 수난을 당하는지도 모른다.


우동은 안되고, 라멘에서 온 말인 ‘라면’은 괜찮은 건 또 뭐야. 오뎅은 안되고 햄버거는 되는것도 웃기지 않나? 전 세계에서 홈페이지라고 쓰는걸 굳이 ‘누리집’이라 하자는건 뭔가. 이래서야 인터넷을 ‘망유람’이라 하고 주스를 ‘과일단물’이라 하는 북한과 다를게 뭔가.

아니 전세계에서 홈페이지라고 하는걸 왜 우리만 누리집이라 하자고 주장하지?

오해하지 마시라. 지금 나는 일본어 쓰는게 뭐가 어떠냐고 주장하는게 아니다. 외래어 쓸 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외래어를 사용하자는거다. 국립국어원이 기준을 가지고 일좀 제대로 하자는 이야기다. 중국이 김치보고 파오차이라그러는건 다들 화내면서 그 역지사지도 받아들여야 논리가 맞는거 아냐?

당신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괜히 별 잘못도 없는 국민들이 일본 외래어 하나 썼다고 욕을 먹잖아. 한글의 표준을 잡아야 하는 국립국어원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은 사실로 선동을 하면 어떡하나? 그래도 국립국어원은 땅투기라도 안해서 다행이라고 봐줘야 하나? 어우 열받아서 말이 좀 길었네.


T.M.I. 기왕 봉인 풀린 김에 일본 문화에 대한 황당한 금기 하나 오픈. 일본 문화가 개방이 되었음에도 현재 한국 공중파 라디오에서 일본어 가사로 된 노래를 트는 것은 방송 심의상 불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황당 포인트. 일본 뮤지션이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더라도 라이브 음반에 수록된 버전은 방송해도 심의에 걸리지 않는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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