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속의 비조화, 조화 속의 불균형
오랜만에 내 팔을 쬐는 햇볕이 좋아서 햇빛을 잡아보려 손바닥을 펴 한 웅큼 집어보았다. 햇볕 뒤에 내 손 모양의 그림자가 모양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온기를 담아 내 안에 간직하려 했으나 그 뒤의 차가운 그림자를 보았을 뿐이다. 양지가 있는 곳엔 언제나 음지가 있었다. 햇볕이 사라진 뒤에는 어둠이 늘 기다리고 있었고, 온기는 항상 비정(非情)과 함께했다.
나무의 피부도 주름을 간직한다. 푸른 이끼가 그 주름 사이사이에 돋아나 나무 본연의 고동색을 방해한다. 그 긴 세월의 흔적을 따라 고개를 높이 들고 초록색을 품은 가느다란 잎들을 쳐다보면, 그저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나무의 긍지와 인내에 감탄하게 된다. 낮동안 그토록 나를 괴롭게 했던 오후의 햇빛이 나뭇가지들 사이로 잠시 눈부시도록 햐얗게 나타나 나에게 안녕한다.
때로 음(阴)과 양(阳)에 섞여 사는게 너무 고통스러울때, 숨쉬고 있는 이 공기마저도 혐오스럽고 나의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인해, 시계바늘이 늘 그렇듯 뻔한 박자에 움직이는 일분 일초마저도 증오스러울때, 코를 손으로 잡고 숨을 참아본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지않고 온 신경이 내 숨에 의해 막혀있을때 나의 사고는 정지한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잡고 있는 고통스러운 생각과 걱정이 나의 온몸에 퍼져 있다가, 내가 숨을 참기 시작하자 내 코끝에 모두 모아져서, 그 순간 나는 나의 숨 하나에 집중하게 되어 생각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행동의 흐름을 막음으로써 '나'라는 유기체 자체에 집중하게 되며, 참았던 숨을 내쉴때 비로소 다시 현실의 공기에 집중하며 '숨을 쉰다'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며 생기가 도는 것이다. 비로소 삶 자체에 집중하며 사는 나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나무는 흙에게 깊숙이 뿌리를 맡기고, 곧게 혹은 양옆으로 기운 나뭇가지와 그 끝에 아슬아슬하게 달린 잎들은 온기를 즐기다가 한기에 벌벌 떨기도한다. 나무는 철저히 음과 양의 조화 속에서 자라난다. 비조화 속에서 발버둥치며 균형을 유지하는 대단한 생명력이다.
나로써 가장 어려운, 타자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나무와 같이 나의 고유한 온기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싫고 사람이 그립고,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온기와 인간성이 그리웠던 때가 있다. 파도가 구르며 나지막하게 어두운 공기를 울리고, 보랏빛, 주홍빛이 스치는 바다의 물결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그 때가 너무나, 너무나 그리웠던 때가 있다.
내가 굳이 주름잡힌 것을 피기 위해 노력하고 차갑고 진실되지 못한 것에 상처받아 대상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을때, 나무는 그저 살아낸다. 온기와 냉기속에서 자체의 생명력을 지켜내는 그 시간 자체를 나무 고유의 호흡으로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