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채 부서지지 않은 가을 낙엽들을 밟으며
맘대로 구겨진 코트를 입고 나와 마른 나뭇잎들을 밟는다. 코트의 주름이 내 몸 위에 착 달라붙고 내 발자국에 산산조각이 난 나뭇잎들이 발등 위에서 춤을 춘다. 구겨진 옷은 뭘 의미하는 걸까. 내가 억지로 욱여넣은 온몸의 주름. 그 사이사이로 난 파열들, 마른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나뭇잎들이 부서져 위로 올랐다가 아래로 흩어진다, 추락한다. 부서진 나뭇잎들이 다시 나를 이루고 주름을 만들어간다.
겨울의 냄새가 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모기장을 걷어내자 코끝에서부터 흉부까지 가득 메우며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한기. 싱그러운 나무들이 겨울의 햇볕 아래서 뿜어내는 열기. 살아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뜨거운 날숨 같기도 하다. 추운 겨울 공기가 싫지 않다. 정겹고, 춥고, 답답하고, 오한에 떨고 있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데우는 듯하다. 걷고 있을 때조차도, 깊고 옆은 강 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 물 밖으로 나오듯 잠이 깬다. 차라리 이대로 안 깨어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겨울에게서 나는 비린내가 있다. 살아 요동치는 바닷물의 냄새와 비스름한 냄새다. 가슴까지 해빙으로 가득 채우는 겨울 공기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듯 낯선 향이 난다. 냉랭한 한기로 가슴속까지 데우는 모순은 가을 낙엽들이 채 부서지지 않고 겨울까지 버티어 온 이유인 듯하다. 나의 마음도 겨울 내내 버티고 있다. 어서 봄의 꽃봉오리가 피어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