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한 기준에 내가 불편한 일상 이야기
아이가 요즘 관심 있는 큐브 대회에 갔다. 유명한 선수가 시범을 보이는 차례가 되자 아이들의 기대가 들려온다. 연단을 바라보느라 앞줄의 남성 한 명이 일어난다. 무대 바로 앞 구역이 아닌 다음구역에 있었기에 그의 등이 많은 사람의 시선을 가린다. 5분이 지나도 서 있는 그에게 화가 나 소리를 지를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할 만큼의 혼란이 아닐까?
내내 점잖았던 뒷자리 가족이 되려 안 보인다 외치며 불편함을 전한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머쓱한 채 자리에 앉았다가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일어선다. 그 뒤로 한두 명의 어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대 앞 구역이 사람들로 둘러싸여 감겨버렸다.
무대를 가렸던 그를 비난하는 것이 되려 머쓱해졌다. 그저 그럴만한 일이었구나 생각에 불편함은 멋쩍게 가라앉았다.
돌아오는 길, 아이의 씩씩함을 격려하고자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다. 새로 개업한 식당을 찾았는데 북적함에 직원들까지도 활기찼다. 분위기에 함께 기분 좋게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중에 옆좌석 손님이 나가고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늦둥이가 있는 가족인지 나이차가 있는 자매가 장난치며 함께 자리에 앉는다. 어머니는 자리에 앉으며 뭔가 화가 났었는지 욕을 내뱉으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괘념치 않고 자리에 앉아 마저 장난을 친다. 고기 구울 채비를 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뒤엉켜 바르게 앉아 있지 않는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윽박지르며 이야기한다.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라며 나무란다.
큰 목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소리와 예의가 상충되어 공기 중에 부딪힌다. 식사 내내 옆자리 가족의 실랑이는 계속되어 소란스러웠다. 불편함에 한 마디를 전하려다 멈추었다. 어느 만큼의 혼잡함이 고기 굽는 식당에서 적정한 것인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고 굽던 고기를 보니 그 사이 까맣게 타버렸다. 괜히 낮부터 계속해서 손해 본 느낌이다. 아직 타지 않은 고기를 찾아 부지런히 귀퉁이로 몰아냈다.
나는 여러모로 취약하다.
소음과 예의 없음과 당당한 뻔뻔함에 쉽게 불편함을 느낀다.
며칠 전 카페에 가던 길에 사거리의 빛바랜 검은색 차가 떠올랐다. 좌회전,우회전을 고민하는 듯한 운전석의 중년남자는 지긋이 휴대폰 화면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신호가 바뀌어도 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뒤에서는 여러 차례 클락션을 울려댔다. 그는 결국 신호가 세 번이나 바뀌어서야 좌회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열린 앞 좌석 창문으로 뒷차들에 알겠다는 손짓을 흔들며 유유히 그는 떠났다.
특이하게도 그 순간에 한 생각은 길을 잘못 찾은 그가 잃어버리는 시간과 비난을 받는 몇 분간의 시간 사이에서 무엇이 실리에 가까운지의 계산이었다. 어쩌면 그의 선택이 어떤 기준에서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황하지 않고 삶의 실리를 취하는 그 태도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마저 스쳐갔다.
나는 여러모로 취약하다. 소음과 예의 없음과 뻔뻔함에.
그 사이 스스로에게 우월감을 부여한 알량함과 결국 실리를 염두하는 솔직하지 못한 자신은 또다른 불편함이다. 적정한 거리와 약속이 무엇이고 얼마나 작은 확률로 가능한 것인지 내심 묻는다.
그새 고기는 또 타고 말았다.
생각하지 말 것을, 괜히 손해 본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