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올해 겨울은 가을을 품어버렸다.
가는 길에는 색을 마저 입지 못한 채 멈추어버린 낙엽 무더기를 잠시 서서 둘러봤다.
어떤 선택은 늘 어떤 이유로 멈춰 서게 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모두가 다르다.
그중 어떤 선택은 양심을 그 중심에 둔다.
하지만 양심의 무게는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족쇄의 무게에 그 자리를 빙빙 맴도는 사이,
누군가는 민첩하게 몸을 옮기며 계절의 열매를 따서 품는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이들은 민첩하게 더 나은 생활을 얻는다.
- 2 -
양심의 족쇄는 주인의 공간을 짓누른 채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허락한다.
이루어낸 것 없는 일상으로 제자리를 맴돌며 하루를 흘려보낸다.
하지만 아주 가끔 바람이 불 때 주인을 지킨다.
마음의 무게가 없는 이들이 휘날려갈 때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돌도록 잡아준다.
어느새 일상에 묵묵한 이들이 족쇄구를 힘겹게 안고 와서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걸어오는 길에 돌부리가 있으면 소리쳐 알려주고,
너무 무거운 족쇄를 가진 이의 공은 함께 들어 걸음을 도와주고,
아직 공보다 몸이 가벼워 힘겨운 이는 잡아주어 편히 해준다.
그들이 모여 앉은 공간은 광장이 된다.
하지만 딱히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자리에 앉아 평소처럼 어제와 오늘을 꿰고, 오늘과 내일을 꿰어낼 뿐이다.
- 3 -
그래서 양심은 왜 들고 있어야 하나.
세상을 유지하기 위함이라지만 그 세상에서 양심을 가진 이가 불리하다면 왜 지켜야 할까.
양심은 외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양심을 어기고 뭔가를 얻은 날 밤은 잠이 오지 않는다.
불쾌함이 생각의 마디마다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다음 날의 기쁜 순간마다 불편함이 머릿속에서 까끌거린다.
아마 왠지 모를 분한 마음이 오늘 있었나 보다.
낙엽 무더기를 밟아 부수어 지나갈까 생각하다, 그만둔 채 돌아 걸어 공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