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에워 덮고 있는 껍질은 세상과 나의 경계이지만 그 밖으로 고개 내밀 수 있는 한정된 자유가 주어지기도 하니 껍질이 나를 가두는 담벼락인 것만은 아니다. 또한 아주 느리게라도, 나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껍질 안의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 좁은 껍질 안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 넓은 세상에 갇혀 살아가는 삶보다 나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껍질이란 스스로의 경계이긴 하지만 자신을 굳건하게 지켜주는 보호막이기도 하기에 껍질 안으로 찾아들어간 인간은 이유 없는 평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겁이 많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이러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미완성의 존재에게 껍질은 삶을 지켜주는 마지막 방어막이고, 삶을 지탱해주는 주기둥이면서, 삶을 위안하는 변명이고,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해 주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껍질은 때론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껍질이 이동하는 길에는 그림자가 아직 퇴화하지 않은 꼬리처럼 붙어 다니게 된다. 태양과 달의 인력에 의해 껍질 바깥의 형체와 껍질 안의 모습이 때를 맞춰 번갈아가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그 그림자의 정체이긴 하지만 언제, 어느 것이 어떠한 형상으로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해의 인력에 끌려 나온 껍질의 [낮 그림자]는 ‘나’라는 형체로 세상에 나타난다. 하지만 달의 인력에 끌려 나온 [밤 그림자]는 아예 아무런 형체가 없거나, 종종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분명 나이긴 하지만 나조차도 그것이 나인지를 깨닫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것은 밤 그림자가 껍질을 닮기는 했지만 껍질의 바깥이 아니라 껍질 안의 무엇인가를 닮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밤]이 그러하고 [밤 그림자]가 또한 그러하듯이, 밤이면 자신의 껍질은,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하질 못하고 밤의 정령의 형태로 자신의 주변을 맴돌기도 한다.
인간은 껍질이자 정령인 그것을 한 번도 시각적으로 담아낸 적이 없기에 그것은 상상력 속에서조차 하나의 지정된 형상을 갖추질 못한다. 그러니 그것을 일컬어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라는 말장난 같은 모호한 문장으로 얼버무리는 것이다.
그 존재는 인간의 삶 속에서는 자신의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오직 [글쟁이의 글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로서 나타나는 형상 없는 존재이기에, 그것을 알아차리게 된 [잘 단련된 글쟁이]는 전생이나 후생에서 또 다른 호칭으로 불러야 할 밤의 정령이었거나, 정령이 될 팔자를 타고난 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선을 잃은 껍질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무모함이거나 경계를 잊어버린 무한함이니, 글쟁이의 글에서나마 실체 하려는 밤 그림자의 욕구라는 것이 사실은, '삶에서 경계란 것을 지워버리려는 글쟁이'의 의도된 본능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by Franz KO, 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