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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과의 만남

만남,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


또 다른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이다. 모든 시작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싱싱해서 마치 새롭게 받아든 선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서재의 벽면 한쪽에 뚫려 있는 커다란 창을 조심스럽게 밀어 연다. 풋풋했던 그 시절의 싱그러운 향기가 새벽바람을 타고 창문턱을 넘어선다.


괜히 울컥해진다. 어떤 추억은 사람을 먹먹하게 만드는 주술을 부리곤 한다.

물기 오른 아름다움은 언젠가의 마른 슬픔이 된다는 것을,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혼자 속울음 삼키는 일이 이제와서 생기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괜찮다, 어차피 혼자만이 겪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


고개를 돌려 맞은편 벽면에 서있는 키 큰 책장들을 쳐다본다. 선반마다 제대로 맞추지 못한 조각들 같은 책들이 삐뚤삐뚤 빼곡하게 박혀있다. 칸칸을 훑어 내리던 눈길이 모서리 헤어진 책 한권에 멈춰선다. “저 녀석, 참 어렵게 구했었는데”, 힘들게 구했던 책일수록 그 속에 박혀있는 활자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더욱 짙은 법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어느 개 철학자’의 나지막한 고백이 카프카, 잠들어 있던 그 시절의 프란츠를 소환한다.

어느 개의 고백 표지.JPG 저자의 책장에 꽂혀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개의 告白⟫


책 읽기를 즐기는 습성을 가진 이에게는 유달리 애착이 가는 책 몇 권이 있기 마련이다. 헤어진 표지가 감싸고 있는 [프란쓰 카프카]란 이름의 작가가 쓴 ⟪어느 개의 고백告白(또는 어느 개의 연구)⟫이 바로 그런 책 중에 하나이다.


지금도 가끔씩은 그렇지만 프란쓰 카프카가 프란츠 카프카와는 다른 사람이기를 바라곤 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둘의 차이는 번역자의 문체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결말에 다다를 뿐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끄집어내다가 문득 출판연도가 궁금해진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이 또한 삶이 지어낸 버릇이다, 단숨에 끝 장을 펼친다. 출간 정보가 책의 끝부분에 몰려있는 것은 당시의 출판사가 지켜야만 했던 공식이었다.

검은 잉크가 묻어있는 출간연도가 ‘단기 4292년’이라고 하니, 서기로 환산해 보면 1959년이다. 1959년이라, 그러고 보니 이 책의 나이가 나의 나이보다 많다는 사실을, 물론 처음에야 알았겠지만,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책장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 책 ⟪어느 개의 告白⟫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캠퍼스 구석구석을 마치 어릴 적 살던 동네 앞마당인양 돌아다니며 살아가던 시절 어느 날의 일이었다.

당시 헌 책방을 놀이터 삼아 찾곤 했던 것은 시간을 때울 요량에다가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지만 천장까지 가득 쌓여있었던 오래된 책들이 뿜어내고 있던 쿰쿰함 때문이기도 했었다.


‘오래된 책의 쿰쿰함은 곧 매력’이라고, 그래서 오래된 책은 어느 것보다 아름답다고, 왜 그렇게 여기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시절에나 지금이나, 그 나이 때의 믿음에서는 “괜히 멋있어 보인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유란 걸 찾아볼 수 없는데도 곧장 신념이란 분칠을 쳐바르기 여사이다.


그 시절에는 지금과 같이 잘 발달된 [찾아내기(검색) 수단]이 없었기에 노발리스나 카프카와 같이 대중성 떨어지는 작가들의 글을 활자로 만나기 위해서는 발품만큼이나 손품 또한 부지런히 팔아야만 했었다.

어쨌든 기억 분명하지 않는 그 날, 기억 희미한 그 헌 책방의 먼지 쌓인 선반 어디에선가 프란쓰 카프카라는 작가가 쓴 이 책 ⟪어느 개의 告白⟫을 건져 올렸던 것 같다.


그것은 목 마른 나그네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고 여전히 여기고 있다. 원래 오래된 인연에는 구구절절한 추억들이 아련하게 덧붙는 법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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