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지 Jun 03. 2023

해달의 잠

두 손을 맞잡고 나란히 누워


대학 시절, 언니와 부산 해운대에 놀러 갔을 때였다. 성수기가 피크였던 시기였는데, 그날 우리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수영을 하겠다며 튜브며 구명조끼며 다 빌려선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사람 반 물 반이었다. 사람으로 뒤덮인 바다 위에서 유유히 떠 다니긴 불가능했다. 나는 물 위에 누운 채 둥둥 떠 있는 걸 좋아했는데 도무지 그럴 자리가 나질 않았다.


게다가 그날은 파도마저 거셌다. 나는 튜브를 탄 언니를 붙들지 않으면 자꾸 저 멀리 휩쓸려 가 언니와 멀어졌다. 결국 우리는 짐도 지킬 겸 따로따로 번갈아가며 파도를 타야 했다. 그날은 참 재밌었지만 동시에 정신없었던, 월리를 찾아라 그림책 속에 떨어지기라도 한 듯 언니를 못 찾을까 봐 내심 걱정되었던 날이었다.


두 손을 맞잡고 나란히 누워 자는 해달 (사진 출처 : oregonwild.org)


해달이 자면서 동료나 가족과 손을 잡고 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참 신기하면서도 어떤 면에선 이해도 갔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자는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해달은 하루 11시간 동안 물에 배영 자세로 누워 쉬기도 하고 잠도 잔다. 잘 때는 물론 쉴 때도 역시 서로의 손을 붙들고 있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또 차가운 물의 온도를 버티기 위해. 손을 맞잡고 나란히 누워 있으면 몸도 따뜻하게 할 수 있고 에너지도 보존할 수 있다.


* 해달의 팔뚝 아래 쪽에는 주머니 모양의 느슨한 피부가 있다. 서로 손을 잡고 있을 동안 해달은 이 주머니에 공기를 저장해 부력을 유지한다. 평소엔 이곳에 전복이나 조개를 깨뜨려 먹기 위한 돌을 넣어 놓기도 한다.


해달은 보노보노의 모델이기도 하다(수달 아님!) 해초로 온몸을 감고 유영하는 해달 (사진 출처 : National Geographic).


해달은 해초로 몸을 감싸 주변을 뗏목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해초를 가지고서도 서로의 몸이 멀어지는 것을 방지하며 물결에 휩쓸리는 것을 막는다.


바다 위의 해달 무리 (사진 출처 : oceanographicmagazine.com)


바다에서 군집생활을 하는 해달은 보통 60-100 마리 정도씩 무리지어 생활한다. 모여 있는 걸 선호하는 것일까. 생존을 위해서이기도 할 테지만, 어떤 면에선 마치 친목 도모 활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집단 수면 또한 사교적인 목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수면 혁명>의 저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그의 책에서 함께 자는 행위는 여러모로 "사교 활동이자 가족 간 결속을 다지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집단 수면은 친밀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행위인 것이다.



해달의 세계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해달도 무리 속에서 함께 쉬어야, 동료와 손을 붙들고 자야 안정감을 느낄 것 같다.


이렇게 같이 모여 지내는 게 습관이 된 해달이라면, 혼자 남겨질 땐 다소 불안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긴긴 밤을 함께 견딜 동료를 옆에 두는 건 이들에게 무척 소중한 일이겠지? 그건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참고 자료

- <Otters Holding Hands: A Fascinating Display of Affection>, American Oceans, www.americanoceans.org

- <Sea Otter Facts>, UC Davis wildlife health center, whc.sf.ucdavis.edu

- <수면 혁명>, 아리아나 허핑턴, 정준희 옮김, 민음사, 2016

이전 05화 박쥐의 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