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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Sep 28. 2020

피조아는 처음이라

우리가 살던 뉴질랜드 집 뒷마당에는 집주인이 심어 놓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우리는 이 나무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열매가 맺기 전에는 그저 초록 잎사귀들이 무성한 평범한 나무로 보였으니 말이다. 철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자 나무에 열매가 하나 둘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매를 보고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지도 잘 몰랐다. 가끔 우리 집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던 옆집 고양이의 간식이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어느 날 장을 보러 마트에 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과일이 과일코너에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았다. 자세히 보아하니 길쭉하고 동그란 초록색 과일인데, 바로 우리 집 뒷마당에 주렁주렁 매달린 그것들이었다! 알고보니 뉴질랜드에서 나름 인기 있는 제철 과일이었다. 이름은 피조아(Feijoa). 난생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순간 ‘심봤다!’를 외치고 싶었다. 굳이 마트에서 돈 주고 사 먹지 않아도 되는 과일이 우리 집 뒷마당에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첫째와 나는 바구니를 들고 피조아를 한 개씩 따 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피조아는 따서 먹는 것보다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떨어진 피조아는 이미 다 익은 거라 당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아보카도처럼 생겼지만 크기는 훨씬 작고, 겉껍질은 매끄럽고 반질반질했다. 숨은 그림 찾듯 땅에 떨어진 피조아를 줍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바구니를 어느 정도 채우고 부엌으로 가져와 씻어 보았다. 음,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그냥 숟가락으로 떠서 생으로 먹어도 되고, 설탕에 절여서 잼으로 먹기도 하고, 빵 반죽에 섞어 케이크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반으로 잘라 냄새를 맡아보았다. 새콤하고 향긋한 달달한 냄새가 올라왔다. 왠지 맛도 좋을 거 같았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숟가락으로 한입 떠서 입속에 넣어보았다.


'윽'


생전 처음 느껴지는 낯선 향수 같은 맛이 입 안에 순식간에 퍼졌다. 분명 파인애플과 구아바의 중간 맛이라고 들었는데, 향수를 한입 떠먹은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도 한 입 먹여보았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기도 했지만 뭐 그리 나쁘진 않다는 반응이었다. 바구니에 담긴 피조아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냥 먹기에는 조금 무리인거 같았다.


머릿속에 한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피조아 속 알맹이만 삭삭 긁어 모아 파운드 케이크를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밀가루, 버터, 계란, 설탕, 베이킹소다 그리고 피조아를 잘 섞은 다음 케이크 틀에 부어 예열한 오븐 속에 넣었다. 유난히 소음이 심한 우리 집 오븐은 웅웅웅 소리를 내며 반죽을 익히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집 안 가득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이방 저 방으로 퍼져 나갔다. 피조아맛이 너무 낯설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막상 빵 굽는 냄새를 맡으니 식욕이 당기기 시작했다. 서재방에 있던 남편이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나온다.


“와 이거 무슨 냄새야? 너무 좋은데??”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도 솔솔 풍기는 냄새를 맡고 달려온다.


"엄마! 빵 다 되었어요?"


남편과 아이들은 오븐에 코를 박듯이 다가가 부푼 빵을 보며 신기해한다. 어느덧 부엌은 네 식구가 모여 북적북적 해졌다.


‘땡!’


타이머가 울린다. 오븐장갑을 끼고 부푼 빵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한 김 식힌 후 칼로 먹기 좋게 자르는데 여전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버터와 설탕이 녹아든 달달한 냄새 90%와 향긋한 피조아 냄새 10%가 코를 자극했다. 따뜻한 빵을 입에 넣어봤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너무나도 잘 어울릴 맛이었다.


피조아 나무는 우리에게 수확의 기쁨과 더불어 달콤한 케이크까지 음미할 수 있는 즐거움까지 선물해 주었다. 낯설었던 피조아는 반죽과 잘 어우러져 파운드케이크에 부드럽게 스며 들어갔다. 우리가 맨 처음 뉴질랜드 땅을 밟고 마주했던 낯선 일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져 갔던 것처럼.

피조아 파운드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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