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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Oct 24. 2021

메뉴 고르듯 직업을 골라

내 시간의 가격은 얼마 정도인가요

-잘 못 꿰어진 첫 단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교란 것이 무엇인지도, 누굴 위한 것인지도, 무얼 배우는 곳인지도, 얼만큼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지도, 그 타이틀이 내게 주는 실질적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 채 대학을 갔다. 대체로 내가 궁금했던 것은 대학교의 이름과 영향력, 학비 정도였으므로 나는 꼴랑 입학 통지서 하나로 첫 단추를 잘 꿴 사람처럼 아무런 의식이 없는 코마 상태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내가 배우고 자라온 교육은 애당초부터 틀렸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방학숙제들. 학생의 두뇌활성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작성되는 독후감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행하는 학습지들. 1등부터 줄을 세워 치하하는 수상제도. 틀에서 벗어난 생각은 싹둑 잘라버리는 유연성 제로를 자랑하는 교육방침. 국영수사과 중에 무얼 잘하는지로 적성의 물꼬를 틈과 동시에 못하는 과목을 도태시킨다. 예체능인지 이과인지 문과인지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설정해주었으며, 머리 쓰는 일이 맞는지 몸 쓰는 일이 맞는지를 재단해주고, 경험으로 배우는 사람인지 책으로 배우는 사람인지를 함부로 평가받았다. 심지어는 가정 평가서의 부모님의 직업에 따라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분류했다. 이분법적인 그리고 흑백적인 교육방식은 똑똑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기 충분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예체능에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문과적인 능력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경험으로 일단 배움을 시작하고 나면 이론을 곁들여야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요가 많다는 사실로 귀함이 정의되지 않고, 이과가 문과보다 위에 있지 않고, 예체능이 밑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인문계가 공고보다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다양한 직종과 직업의 필요성과 존중성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아이들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MBTI니, 애니어그램이니 하는 검사에 시간을 축내면서 우뇌니 좌뇌니 직관형이니 외향형이니 하는 소리들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진로교육, 적성교육을 시켰다면 대부분은 유행하지도 않았을 별 의미도 없는 검사들이었다.


공부란 본래 삶을 즐기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School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스콜레 scole로서 여가를 즐기는 것, 교양을 쌓는 것을 뜻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고학력자들이 많은 나라에서 가장 여가를 즐길 줄 몰라 밥 말아먹은 교양으로 일명 ‘갑질 문화’라는 신문화도 탄생시켰으니, 이 얼마나 삶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때때로 공부란 타인을 짓밟는 기술을 획득할 티켓을 가질 기회를 얻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에게 인정받고자 인품을 쌓기보다는 나의 인생에 지나가며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의 말에 더 인정받고자 한다.


단미 "15살까지 수영선수로 살아왔대, 메달도 땄고. 그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까미 "당연히 뭐 국가대표 그런 거 해야지. 올림픽도 나가고, 그쪽으로 나가야지"

단미 "그 애가 뭐랬는 줄 알아. 수영을 원 없이 해봤기 때문에 이제 다른 것에 도전해보고 싶대. 근데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렇게 교육을 하더라? 즐기도록"

까미 "전혀 상상이 안되네. 진짜 여기니까(호주) 가능한 일이다"


점심에 먹을 음식 메뉴를 고르듯이 직업을 골랐다. 매우 신중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대충도 아니었다. 첫 직업을 고를 당시 내가 실제 직업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직업의 이름과 겉으로 보여지는 사회적 시선과 대우, 사회적 인기와 경쟁률, 필요한 자격증, 대략적인 월급 정도였고, 실질적인 업무와 보람, 업무 환경, 업무 강도,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 정확한 연봉, 비전, 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나는 내가 매운 것이 먹고 싶은지, 이번 주에 너무 튀김을 많이 먹지는 않았는지, 배달비까지 합치면 얼마인지 정도는 고려했지만, 이 음식이 어떤 주방에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정도는 모르는 상태였던 것과 같다.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적성과 능력, 선호도가 얼마나 부합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직업을 골랐다. 남들보다 빠른 스타트, 드디어 돈을 번다는 기대감, 그리고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들에 너무 얽매여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음식은 내일도 모레도 다시 고를 수 있었지만, 직업은 그럴 수 없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다.

김연아 박태환을 보면 부러웠다. 아역배우도 부럽고, 축구선수도 부러웠다. 어린 나이에 재능을 발견한, 한 곳에 매진할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사회에 나오니 사람들의 기대치는 나이와 비례하는데, 어디에도 재능은 없고 돈은 벌어야겠고 마음은 조급하고 출근은 하기 싫은데 어디에서도 어중간한, 좋아하는 걸 잃어버린 부끄러운 내가 서 있었다. 친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나온 과를 살려 취직을 해서 소명을 실현하는 애들은 손에 꼽기도 어려웠다. 'IT로 가야 전도유망하고 돈도 잘 번다', '그림 그려서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 거냐', '그건 집에 돈 있는 애들이나 하는 거다',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시기에 실용주의자들의 질문 앞에서 담대해지기가 어려웠다. 우리처럼 살아보지 않은, 우리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기성세대들의 수많은 회유에 휘청거리다가 나는 10년을 돌고 돌아 아직도 사회에 제대로 두 발 붙이지 못한 세대가 되었다. 삶의 방식을 어떻게 할지 생각도 고민도 할 틈 없이, 우리는 직업부터 선택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라고,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일을 하라고. 자신의 길 찾는 방법 하나도 제대로 고찰하게 해주지 못하는 어른들이 참 잘못된 믿음을 어린아이들에게 주입하기는 쉬웠다. 재미난 것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찾는 것은 참 쉽고 그런 것들은 많았다.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할 만한 직종은 지금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사람으로서 소유한 열정은 수시로 변하는 데다, 그것은 때로 무모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때때로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소멸되어가는 나의 열정들을 허무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몇 번 뜨겁게 데인 나는 또다시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것들 속을 주문지 고르듯 방황한다. 소수의 사람과 일할지 다수의 사람과 역할분담 확실하게 일할지, 꾸준히 도토리 모으듯 일할지 한 방을 노릴지, 남의 밑에서 일할지 내가 주체적으로 일을 벌일지, 생명이 짧은 직업을 택할지 생명이 긴 직업을 택할지. 나는 성공과 성취를 위해 살고자 하는 게 아님에도, 내가 진심으로 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무엇인지 무엇일지 잡힐 듯 잡힐 듯 희미해져 가는 듯했다.


돈가스를 먹을까 냉면을 먹을까 정도로 고민하던 나의 직업선택 덕분에 10년의 사회생활 동안 꿈이란 것이 소멸했다. 그림을 잘 그려서 미대를 갔고, 기사 쓰는 것에 재주가 있다는 소리에 잡지사 인턴을 했고, 친구들을 스타일링해주는 것이 재밌어서 스타일리스트 어시를 시작했다. 정식으로 바뀐 직업만 4개, 자잘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아마 10개는 가뿐히 넘지 싶다. 마지막으로 직종을 바꾸고 나서, 크게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실패했다. 여느 미디어나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본인의 일과 취미가 일체화된 삶을 살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실패했다. 시간의 질에 따라 삶의 가치는 크게 바뀌겠지만, 나는 이미 시간의 양을 너무도 많이 소모했다. 사회에서는 이뤄지지 않은 사랑을 여전히 사랑이라 불러주었지만, 나의 이뤄지지 않은 꿈은 실패라고 라벨링 해주었다. 내가 첫 단추부터 잘 끼웠다고 생각한 대학교, 아니 고등학교부터 나의 진로설정은 잘못된 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억울함은 낙하산도 없이 나와 나의 꿈을 함께 추락시켰다.


단미 "전기과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

까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지, 선생님이 취업이 잘 되니까 가라고 해서 갔지"

단미 "그런 경우가 많지"

까미 "아마 자기가 그런 걸 묻지 않았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쭉 했을지도 몰라."



-내 시간의 가격은 얼마인가요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모르는 채로 일을 했다. 정확히 일이라기보다는 노동을 이겨냈다. 분명 처음부터 모르지 않았는데, 가다 보니 일은 재미도 희망도 없고 더 이상 일에 의미 부여가 힘들어졌다. 내 또래들은 조기 은퇴를 꿈꾸며 현재를 열심히 업셀링 하고 있었고, 나는 토요일 일요일을 사기 위해서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월화수목금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권태라는 말로 포장하며 버티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했고, 누구나 양복 주머니에 사직서 하나쯤 품고 산다고 했다. 먹잇감을 물어뜯을 때까지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사냥개같이 한 끈기 하던 나는 비관적이 되어갔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그럴 것이라고 꿈꾸었던 것과 매우 다른 우주에 있음을 알게 된 순간, 상처 받는다. 누군가의 자유는 돈으로 쉽게 살 수 있었고, 나의 자유는 누군가에 의해 박탈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하는 내가 과연 언제까지 인내했을 때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고진감래란 어쩌면 나 같은 인간들이 아닌 나 같은 인간들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꿈을 찾지 못했다. 한심했다. 닭발이나 좋아할 줄 알았지, 나이 서른을 먹도록 재능은커녕 스스로가 무얼 좋아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비루한 인생이라니. 남의 돈 받기는 어렵고,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더라도 싫어하는 일은 하기 싫었다. 까만 글씨에 불과한 능력들을 사회에서 쓰기 위한 용도로 배워놓다 보니 스펙은 쌓이는 것 같았다. 허무했다. 무엇으로 살 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종류의 고민이 아니었고, 무엇을 위해 살 지는 꼭 해야만 하는 고민이었다. 흘러가는 대로 살면 손에 뭐든 쥐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모든 교육과정을 리셋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무엇을 위해 살지 고뇌하는 힘 대신 내가 암기해야만 했던 정보들은 이제 10초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유식해 보이는 합리적 근거를 대는 법과 상사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하는 법은 배웠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한마디조차 알지 못했다. 헛똑똑이에게 어울리는 임시직은 있을지언정, 소명 따위는 없었다. 똑똑함과 이력의 어필 대신에 머리와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는 방법부터 배워야만 했다.


직업은 왜 가져야 할까. 직업은 왜 필요할까. 인간 사회의 구성요소에는 다양한 직업이 필수적이지만, 50억 인구가 모두 직업을 가져야만 할 타당성은 찾기 어렵다. 세상은 빠르게 발전해서 빨래도 청소도 설거지도 기계가 해주고, 지하철은 혼자서 움직이며 은행업무는 앱이 해주고 상담도 챗봇이 하며 쇼핑도 클릭 한 번이면 되고 식당에서의 주문도 기계가 받아주며 이제는 운전조차 자동차가 대신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 벌고 있는데, 19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일을 하고, 일을 한 노동의 대가는 집을 사기 위한 대출로 돌아온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그걸 계속한다.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직업에 몸담고 있는 것도 아니요, 가업을 이어야만 하는 무게가 있는 것도 아니요, 신의 부름을 받고 직업을 받드는 것도 아니요, 직업이 삶의 만족조각중 일부분은커녕 불행조각인 사람도 많다. 성인이 되는 순간,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는 때가 온다.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는 많든 적든 어쨌든 돈이 필요하고 그리하여 직업을 갖는다. 충분한 준비 끝에 비상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엔진에 문제가 생겨서 보니 돌아갈 홈그라운드가 없다. 돈에 입각해 살면 쉽게 인생이 허무해지기에 웬만하면 내가 잘하는 일로 인정도 받아 욕구 충족을 시키는 삶을 완성시키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 초보자인 나는 재화, 자유, 관계, 인간다움을 추구하지만 우린 그것들을 조화롭게 누릴 기회도 없이 오히려 소외된다.


그렇게 소외된 수백만 노동자들을 목격한 요즘 세대는 시간을 팔아서 시간을 사는 행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한다. 돈보다 자유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시간적 여유.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 돈은 누구에게나 최고는 아니며, 유일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부모세대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일에 대한 나의 무궁한 헌신은, 지속적인 다른 것들의 등한시로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워라밸.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찾는 것은 결국 한쪽을 희생해야만 한다는 불균형 관계를 기정 사실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녕 일과 삶의 조화로움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또는 인간의 야망 속에서 가능키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킹무원,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시대다. 인생이 바람 앞의 촛불 같으니 직업이라도 영구적인 LED이길 바라는 소망이 투영된 것일까. 평생 소모품인 운명을 직감하기에 우리는 새해에 건강을 가장 먼저 기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 병이라도 덜컥 진단받으면 안정적인 직업도 지위도 일확천금도 시간도 뭣도 필요가 없어진다.


키르케고르의 철학

개인의 의무는 자신의 소명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 운명을 이해하고,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나의 삶과 죽음을 질 수 있는 소신을 찾아내야 한다.



-내 인생의 인사권자


알바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호주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파트타임 잡을 여러 개 갖는다. 아르바이트도 5년 하면 직업이다. 서른이 넘어서야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 가닥을 잡기 시작한 나는 안정적인 직업이 없음에 만족한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원한다. 나의 재능으로 회사의 이윤을 창출해주는 걸로 급여를 받고, 나는 옛 선배들처럼 스쳐 지나가는 초년생들에게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쓴소리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태초부터 잘못된 직업교육은 그때나 지금이나 토시하나 변하지 않았음을 방황하는 알바생들을 통해 피부로 느낀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르고, 뭘 해도 인생이 불안한 어린양들. 가치를 창출해야 시간당 급여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인지 불안해하며 자신감이 바닥에 꺼진 어린 알바생들을 보면 어렸던 나의 그림자처럼 보인다. 스스로 인생의 인사권자가 되고 나면, 그 직업이 안정적인지 불안정한지는 문젯거리의 중심에 놓일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령지는 성취가 아니라 성찰이고 성공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러나 때로는 인식의 전환은 우주를 여행할 결심을 하는 것보다 어렵다. 직업적인 성공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과거의 나의 어린 그림자들에게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직업에서의 성공이란 등산처럼 정상에 도달하는 어떤 지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글 쓰는 것이 재밌길래 글을 쓰고, 와인이 좋아서 와이너리를 다니고, 새로운 자극을 좋아해서 여행을 다닌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면 글을 쓰면 되지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요리를 좋아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나누면 되지 반드시 식당을 차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춤이 좋으면 새로운 춤을 배우고 댄스크루를 만들어 즐기면 되지 반드시 아이돌이나 가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의 인생에서는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쟁취해야만 하는 메달로 만들어서 질려버리게 만들고, 아이들에게는 일찍부터 유명세와 셀럽을 동경하는 문화를 조성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히 존중하지 못한다. 가수는 가수로, 소방관은 소방관으로, 의사는 의사로. 환자가 의사보다 상처의 고통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수 있고, 새로 들어온 신입이 나보다 손님 심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흥미 있는 것을 계속해서 탐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순수한 욕망에 있어서는, 명예도 부도 권력도 유명세도 넘볼 수 없다. 


까미 "이 나이에 직업을 갑자기 바꾸면 한국에서는 철없다고 욕할 텐데"

단미 "그렇겠지"

까미 "여기선 내가 지금 학교를 들어가서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는 것에 부담이 덜한 것 같아"

단미 "아무도 이상하게 안 보니까"


아무리 첫 번째 서랍 속에 사표를 간직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직장은 매일 골랐다가 때려치우는 것이 불가하다. 실제로 일터를 고를 때, 고려되는 수십 가지의 것들은 무의식적인 팝업창처럼 떠다니지만 반대로 퇴직의 이유가 될 때는 한방에 정렬된다. 연봉, 상여금, 추가 근무수당, 연차, 실제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휴가일수, 회사의 비전,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의 일치도, 가치관, 대출한도, 회사의 역량, 나의 역량, 내가 회사에 할 수 있는 기여도, 업계 대우, 경험, 지속가능성, 성장성, 안정성, 복지환경, 출퇴근 거리, 근무시간, 대인관계, 텃세, 위계질서, 사회기여도, 사내 문화, 유리천장, 팀 내 분위기. 각 항목에 가려진 괄호까지 합한다면 꽤 많은 것들이 고려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개인에게 중요한 우선순위 몇 가지를 제외한다면 대개 우리는 융통성 있게 조율할 수 있음을 믿고 들어간다. 이 얼마나 로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과 같은 믿음인지. 그 모든 가능성은 일단 차치하고서 최대한의 고심 끝에 구직활동을 했더라도, 기업의 주가와 사람들의 평가보다 나의 줏대를 밀고 나가는 것이 결국은 너구리에 계란을 푼 것과 같은 견딤이 될 수도 있음은 염두에 두어야 마땅하다. 


의지하려는 직장생활의 연속은 양방 간 다소의 상처를 남긴 채 끝맺음을 했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입사했던 직장은 더 이상 배울 게 없으니 나가는 곳이라는 전제는 진즉에 틀렸다. 시작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후천적 열의와 재능을 잘 엮어내 보려는 사고를 하지 못했다. 일의 결과는 대체로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일단 스위치가 켜진 내게 일의 결과는 나만의 커리어 성과였고 그것이 결국 인생 성과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까지는 알 턱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고쳐먹지 못한 사고방식이었는데, 나는 대체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저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발악하면서도 삶의 자세는 그대로였고, 마음가짐은 환경을 탓하며 동굴을 파기에 바빴다. 나는 제삼자가 되어 나를 안타까워하며 몇 년을 보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자신에게 딱 맞는 탁월한 직업을 선택한 사람, 본인의 일과 취미가 일체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과거를 끊임없이 질겅질겅 곱씹었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 교육과 사회의 흐름은 엉뚱한 곳으로 나를 인도했지만,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환상에서 빠져나오길 꺼리는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도 꿈도 열망을 바칠 것도 찾지 못해도 나쁘지 않다. 베팅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다. 내가 만든 규칙에 걸려 넘어질 때면 규칙을 바꾸면 되고, 내가 고른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고르면 된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만든 규칙과 꿈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세상이 만든 장애물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지만, 결국 손을 뻗어주는 것도 핸디캡을 주는 것도 자신이다. 달콤한 커피를 음미해내는 것이든, 강아지를 돌보는 것이든, 주말에 친구들과의 수다이든, 필름 카메라로 찍는 사진이든,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만 한다면 소소한 꿈도 원대한 꿈도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 나와 함께 보이지 않던 길을 밟아 나간다. 매일 가치 있는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걸음 자체가 성공이며, 그것은 지속적으로 얻어지는 가치다. 아직도 땅에 코를 파묻고 킁킁거리며 직업을 그리고 할 일을 탐색 중인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나의 그림자를 응원하고 싶다. 잘 못 꿰어진 첫 단추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시작했던 어린 그림자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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