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영어교육에 왜 시간과 돈을 쓰는 걸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대다수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영어수업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일부러 피했다. 유아시기에는 모국어가 탄탄하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생각과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통번역기가 나올 거라고 믿었다. 아이들 영어교육에 대해서는 관심도, 정보도 없는 무지한 엄마였다. 1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당연히 ABC도 몰랐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큰 아이 1학년 때, 11~12월에 두 아이를 데리고 한 달간 치앙마이로 한 달 살기를 떠났다. 독박육아와 친정살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한계에 부딪혀 어디든 떠나야만 했다. 여행의 목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항공권과 숙박 외에는 그 어떤 계획도 하지 않고 출발했다. 아이들과 매일 아침식사를 하며 "오늘 뭐 할까? 어디 갈까? 뭐 먹을까?"를 이야기하며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마음껏 게으른 일상을 보내고, 오후에 1~2시간 수영을 하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맛집을 찾아 나섰다.
아이들이 어려서 많이 먹을 때도 아니었고, 물가가 워낙 저렴해서 매일 외식을 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때로는 야외에 놀이터가 있는 카페에서 아이들이 먼저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여유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좋았다. 차가 없으니 매번 그랩기사를 부르고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아이들 손을 잡고 골목골목 걸어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낯선 도시에서 아이들과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었다.
영어가이드 투어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 친정엄마가 여행을 오시고 나서야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도이수텝 야경투어를 가려는데 한국인 가이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영어가이드로 신청했고, 다른 날은 영어가 가능한 운전기사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용해 내가 미리 계획한 동선대로 이동하는 하루를 보냈다. 유튜브로 영어를 배웠다는 20대 청년은 꽤 영어를 잘했고, 전통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영어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치앙마이가 아이들의 첫 해외여행은 아니었다. 이전에 괌과 사이판을 가본 적이 있었으나 투어 없이 호캉스만 즐겼었다. 아이들에게는 누군가 우리에게 영어로 설명하는 모습이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나 보다. 영어를 전혀 모르면서도 1호는 영어가이드 앞으로 바짝 따라가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했고, 내게 계속해서 "뭐래? 뭐래?" 하며 통역을 요구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느긋하게 가려고 하면 "엄마! 빨리 와" 하며 소리치곤 했다.
영어에 대한 열망
영어가이드 투어 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호가 내 침대로 조르르 달려와 말했다.
“엄마! 영어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나도 영어 잘하고 싶어. 투어 할 때 설명을 못 알아들으니까 너무 답답했어. 그리고 여행을 편하게 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할 것 같아. 나 뭐부터 해야 해?"
아, 이런 게 동기부여라는 거구나. 영어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투어를 하는 동안 영어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눈을 반짝이는 아이를 보며 지적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는 걸 새롭게 알았다.
그러나 아이의 영어에 대한 관심은 반갑기보다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으니까. 중학교 1학년이 되기 직전 겨울방학에 ABC를 배웠고, 중학교 교과서로 영어를 배운 나였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영어를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맞는 영어교육 방법에 대한 공부가 먼저 필요했다. 내가 배운 영어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진: Unsplash의 Ian Schneider
엄마표영어, 너로 정했다
새로운 걸 알아볼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도서관에 가서 같은 주제로 5권 이상의 책을 빌려오는 거다. 아이들의 영어공부법과 관련된 책들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엄마표영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들이 꽤 많았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도달한 결론은 하나였다. 그것은 '영어영상시청'과 '영어책 읽기'였다. 영어책을 사서 보려면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웬만한 영어학원보다는 지출이 적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에게 유튜브에서 직접 검색하여 보여주는 것을 피하려고 번거롭더라도 외장하드에 영상들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abc송으로 시작해 숫자 등 노래부터 보여주고, 두 아이 모두 좋아한'맥스 앤 루비'에서 정착했다. 책에서는 영어영상 시청을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는데, 원래 한국어 영상을 많이 보여주지 않기도 했고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인지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됐다. 2호는 언니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함께 했고, 아마 아이들은 tv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