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 글은 연재 브런치 버전으로 다시 발행했습니다.]
아이들이 깨어 있는 시간에는 내 이름은 “아빠”다. 아빠라는 이름은 호출과 동시에 미션을 수행한다.
”아빠! 나 배고파요!”
”아부지! 심심해요.”
(어린아이들이 ‘아부지’라는 표현이 너무 귀여워서 세뇌 교육을 시켜서 가끔, 아부지라고 불러준다.)
8살 딸과 7살 아들이 하루를 가득 채우는 동안, 나는 끝없는 미션을 수행 중인 예능 채널의 출연자처럼 움직인다.
그러다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세상은 고요하고, 아이들의 방에서는 부드러운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순간이 바로 나의 첫 번째 ‘해방’이다.
따뜻한 차를 우려내는 소리조차 도서관 ASMR처럼 조심스럽지만, 그 향기는 내 안의 엔진을 깨운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유일한 배경음악이고, 단어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두 번째 ‘해방’은 밤 10시 이후에 찾아온다.
아이들이 “잘 자~ 좋은 꿈 꾸고”를 말하고 뽀뽀하고 안아주고 나서 방 문을 닫는 순간, 마치 연금술사가 비밀 실험실 문을 여는 듯 설렌다.
이때부터는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다. 책 속 문장을 곱씹으며 ‘아, 이거다’ 싶은 문장을 발견하면, 손가락이 키보드를 타고 경쾌하게 달린다. 글이 술술 풀리는 밤에는,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작가가 된 기분이 든다.
이 해방의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틈에서 나는 다시 ‘나’라는 사람을 복구하고, 내 생각과 문장을 세상으로 풀어낸다.
육아의 무게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그 순간이, 내게는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진짜 자유다.
결국 나의 해방은 화려한 여행지도, 값비싼 취미도 아니다.
아이들이 자는 동안 펼쳐지는 조용한 책과 글의 세계.
그곳이 나만의 왕국이고, 그 시간만큼은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성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