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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움 그 자체

잡채

by FreedWriter

우리나라 음식 중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요리 중 하나가 아닐까. 예로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었고, 지금도 잔칫날이나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존재.


그 이름은 바로 잡채다.


당면은 물에 불리고, 당근·시금치·양파·버섯은 각각 따로 볶아야 한다. 돼지고기는 양념에 재워 두어야 하고, 불려 살이 오른 당면과 함께 이 모든 재료들을 다시 모아 조화롭게 섞는다. 여기에 간장, 설탕, 참기름, 다진 마늘, 후추 같은 조미료들이 지휘자의 손끝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교향악단이 연주를 시작하듯 어우러져 완성되는 음식.


그리고 맛있다. 확실히 맛있다.


각기 다른 재료의 본연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함께 모였을 때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내는 잡채는, 사실 비빔밥과도 닮았다. 밥과 고추장만 빼면 거의 쌍둥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잡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번거로우니까.

내가 요리를 하지 않으면서 왜 번거롭냐고?

어머니께서 늘 힘들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어릴 적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한 패널이 “잡채를 싫어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어머니가 힘드실까 봐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 사실은 좋아하지만, 그 말을 해야 어머니가 잡채를 만들지 않으실 테니 차라리 싫다고 했다는 고백이었다. 그 말이 내 마음속에 남아 나도 어머니께 “잡채는 별로예요”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맛은 늘 좋았다. 뷔페에 가면 꼭 한 접시는 담는다. 다만 대량 조리된 잡채는 맛이 일정치 않아 늘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내 아이들이 잡채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엔 자주 해주시지 않던 잡채를 어머니께서 손주들을 위해 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묘해진다. 주객이 전도된 듯, 아이들에게는 흔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잡채는 성장과도 닮아 있다.


하나의 경험이 하나의 재료가 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활동은 조미료가 되어 나를 완성해간다. 결국 여러 재료가 모여 새로운 맛을 내듯, 나라는 사람도 성장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잡채는 더 이상 번거로움이 아니다.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문득, 또 잡채가 먹고 싶어진다. 직접 해 먹기엔 여전히 벅차지만, 언젠가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보고 싶다.


‘아니면… 그냥 주변에 반찬 가게나 하나 차려야 할까?’


반찬 가게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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