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

by FreedWriter


길 위를 걷다 보면 늘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바로 보도블럭이다.


예전에는 그저 네모반듯한, 또는 지그재그 형태의 아무 무늬 없는 회색 블럭이 전부였다. 냉정하고 단조로운 바닥 위에서 사람들은 무심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보도블럭은 달라졌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소방차 전용'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새겨진 노란색 보도블럭이 놓였다. 위급한 순간, 생명을 지키기 위한 길을 알려주는 소중한 표식이다. 또 다른 길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무늬의 보도블럭이 이어진다. 동그랗거나, 길쭉한 네모 모양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방향과 방법을 안내한다. 노란색의 선명한 길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일깨워 준다. 무늬와 표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안전과 희망을 지탱하는 약속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의 삶도 이 보도블럭과 닮아 있다. 처음에는 아무 무늬 없는 시절이 있다.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그저 걷고, 견디고, 쌓아 가는 평범한 날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지나면서 우리는 저마다의 무늬를 새겨간다. 어떤 이는 책임이라는 글씨로 관리직이라는 삶의 무늬로, 어떤 이는 배려와 사랑이라는 글씨로 봉사의 삶을 사는 무늬로 남긴다. 그리고 그 무늬는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 함께 걷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보도블럭이 발전하듯 사람도 성장한다. 무늬 없는 블럭이 모여 길을 만들고, 무늬가 더해진 블럭이 세상을 안전하게 하듯, 우리의 경험과 흔적도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된다.


오늘도 나는 무심히 밟고 지나가던 보도블럭 위에서 생각한다. 내가 남기고 있는 삶의 무늬는 무엇일까.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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