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표지를 넘기면 독자의 눈앞에 좌우 페이지가 동시에 펼쳐진다. 일반적인 경우 시선은 책 페이지를 넘기는 방향을 따라 흐를 것이다.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할 뿐 책 구조는 독자의 읽기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그림책의 경우 글과 그림의 배치에 따라, 혹은 의도에 따라 조금 다른 읽기 방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책에 담긴 내용이 그림이든 글자든 걷어내고, 구조만 한번 보자. 펼친 책 가운데에는 뚜렷한 선이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 낱장의 종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이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 페이지는 ‘연결’되어 있는가? 이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는 작가는 좌우 페이지를 하나의 장면으로 보고 그림을 그리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중심선이 두 페이지를 ‘분리’하고 있다”는 의견도 말이 된다. 이 경우 좌우 페이지를 각각 독립적인 공간으로 설정하여 작업이 가능하다. 서로 관련은 있지만, 완전히 연결되지는 않은 공간으로.
위의 문법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대표적인 사례의 그림책을 한 권 소개한다.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은 바쁘게 살던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기억을 잃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병원을 찾아간 남자는 의사로부터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육체가 움직이는 속도는 영혼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일에 치여 바쁘게 살던 남자의 영혼이 육체를 미처 쫓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남자에게 집에 가만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리라는 처방을 내린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서너 장의 페이지에 연결된 장면을 그려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다른 시도를 한다. 바로 그림 한 페이지와 빼곡한 줄글이 있는 펼친 면으로 대신한 것이다.
그림책 중심선의 기능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활용하는 전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건 사건의 발단 이후부터다. 바로 별다른 글밥 없이, 왼쪽에는 영혼(소녀)의 이야기, 오른쪽 페이지에는 육체(남자)의 이야기만을 보여주기.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오른쪽 장면의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페이지를 넘기면 식탁 위의 식물이 자라거나 소품 종류나 가구 위치가 바뀌고, 남자의 머리카락이 자라는 정도의 미묘한 변화만 관찰될 뿐이다. 반면 영혼을 대변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왼쪽 장면은 변화무쌍하다. 카페, 바다, 마을, 기차 등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공간이 급격히 바뀌며 소녀가 이동하고 있다는 단서를 주는 장면이 계속된다. 그래서 이 책은 적어도 세 번 봐야 한다. 한 번은 왼쪽 페이지에만 집중해서, 두 번째는 오른쪽 페이지에만 집중해서, 마지막은 비교하면서.
그림책 말미에 이르러, 마침내 영혼과 육체가 만난다. 이때 영혼과 육체의 이야기를 따로 전개하며 구분되었던 좌우 페이지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이제 육체와 영혼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림책에서도 좌우 페이지가 이어진 장면으로 보여준다.
육체와 영혼이 멀리 있을 때나 서로 마주 볼 때나 그림책 자체의 크기는 언제나 똑같았다는 사실은 생각해 볼 만하다. 관점과 기획에 따라 그림책의 좌우 페이지는 같은 공간이기도, 시간이 되기도 한다. 줄곧 모노톤이었던 그림이 육체와 영혼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페이지를 기점으로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지고, 배경에 흔적처럼 있던 모눈 무늬가 사라져 깨끗해진다는 변화 또한, 책의 물성을 활용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잃어버린 영혼’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책이 가진 물성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책의 중심선은 두 장면을 분리하기도, 잇기도 한다.’, ‘하나의 펼친 면은 같은 공간이거나 같은 시간 속 다른 공간이다.’, ‘페이지를 넘기며 사건이 진행되고 시간이 흐르며 무언가는 변한다.’ 등. 특별한 사실이 아닌 아주 기본적인 목록이다. 그러나 이 요소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혹은 작가가 이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지에 관한 여부만으로도 고유한 문법을 가진 그림책이 태어날 가능성이 결정된다.
어떤 이야기는 한 권의 그림책이 가진 방식으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안겨 주는 책들이 있다. 영화도, 소설도 아닌 딱 이만큼의 물리적인 크기와 재질로 표현되었어야 한다는 가정을 하게 만드는 책. 이런 그림책에서는 그림과 이야기, 글 등이 각각 떼어낼 수 없이 하나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처럼 책의 물성과 이야기의 관계가 긴밀한 그림책은 그만큼 존재 의의가 큰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대체할 다른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순히 책에 그림과 글을 입히는 것을 넘어, 책의 물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응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작가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몇 년 전 이 그림책을 처음 보고 느꼈던 감상은 지금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전까지 내게 그림책이란 ‘어린이를 위한 책’ 아니면 ‘귀여운 그림들이 있는 책’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내가 은연중에 갖고 있던 ‘일반적인 그림책의 인상'을 단번에 깨뜨렸으며 그림책 창작을 시작하는 뚜렷한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내가 그림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 주었고 지금까지도 영감을 주는, 고마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