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고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그림책 두 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20여 차례에 가까운 그림책 만들기 강의를 진행하며 200명 이상 수강생의 그림책 만들기를 지도했다. 처음엔 단순히 그저 그림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음뿐이었지만, 어느덧 작업과 강의를 이어 오며 지금 여기에 도달해 보고 나서야, 그림책의 세계가 어떤지 보이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이라는 분야는 생각보다 여러 요소가 난잡하게 엉켜 있는 곳이었다.
그림책을 간결하게 정의하면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이다. 이 설명에 부합하는 책 유형은 아주 많다. 그림과 글의 비중이나 상호작용, 책의 형태와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까지 고려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그림책 경우의 수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폭넓은 주제와 대상 독자, 유형 때문에 연구 방향도 다양하다. 접근 방식에 따라 아동 문학 분야에서는 학습 매체로, 또는 책의 형식적 측면이나 시각 예술 측면에서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언뜻 보면 무궁무진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장르인 것 같지만, 그만큼 온전한 독립성을 갖지 못한 장르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일례로, 한국의 대학 학과과정에 그림책 학과는 따로 없다.
누군가 그림책을 어린이가 보는 책이라고 말하면, 다른 누군가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새로운 독자층을 만드는 시도를 한다. 이에 맞서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장르’라는 제안도 나온다. 서로 다르지만 각각의 입장들은 일리가 있어서,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무엇인지 합의에 이르는 길은 멀어 보인다.
‘글, 그림, 책’이 세 가지 요소가 관여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어쩌면 그림책은 자신의 세계를 복잡하게 만들 요건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편의에 따라 생각하도록 놔두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장르의 모호함이 가진 허점이 무자비한 방식으로 드러났던 적이 있었다. 그림책을 ‘어떤 방식으로든 글과 그림을 엮어 책을 만들면 된다'고 오역한 사람들에 의해 ‘그림을 잘 못 그려도 얼마든지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문구를 건 광고가 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펀딩으로 홍보된 사업은 단기간에 꽤 많은 수익을 올렸지만, 다행히 그림책 협회의 대응으로 광고는 내려갔다. 그림책 한 권에 몇 년의 시간을 들이는 작가들도 있다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쓸 수 없는 문구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에게 그림에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림 실력이 좋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하지만 그랬던 이유는, 수강생들이 그림책 제작을 즐겁게 느끼는 게 우선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그림책을 만드는 요건이 꼭 완벽한 그림은 아니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물론 이런 생각과 의도는 ‘누구나, 아무렇게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말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한 끗 차이로 이해와 오해를 오가는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지반은 이렇게나 불안하다. 지반이 약할수록 작업에 관한 회의감이 커진다.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나는 그림책을 바라보는 나름의 관점을 정립하는 중이다. 내게는 이야기 전개 주체에 따라 그림책을 분류하는 기준이 가장 명쾌하게 다가온다.* 이 기준에 따라 그림책을 ‘순수 그림책’과 ‘이야기 그림책’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순수 그림책은 이야기의 전개 주체가 그림인 경우이며, 이야기 그림책은 글이나 문장이 이야기 전개의 주체가 되는 그림책이다. 이야기 그림책에서 그림은 삽화처럼 더해진 정도이지만, 순수 그림책에서는 그림이 전달하는 정보의 비중이 훨씬 크다. 보통 그림책 작가들의 활동 무대는 그래서 순수 그림책 분야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그림책을 시작하고 싶었던 동기의 발원지는 여기였다.
그렇다면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길 건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한데, 현실에서는 그림책을 활용한 활동들이 그림책에서 다시 이야기만을 빼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도서관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교육 기관에서 그림책을 활용한 수업 주제가 감정 치유나 소통 문제 등을 다루는 경우가 그렇다. 그림책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독자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이런 활동들은 의도와 무관하게 그림책을 단순한 학습 매체나 특정 분야의 분과로만 인식할 빌미를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작가들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그림책의 여러 요소를 고려해 만든 작업의 극히 일부만이 가치를 얻게 된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그림책의 온전한 가치는 글과 그림, 그리고 책이라는 특정한 형식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보다는 그림책의 시각 표현성에 중점을 둔 연구가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해야 할 다음 단계는 하나하나의 그림책 사례로 돌아가는 것이다. 동시대 그림책 지형을 짚어 보기. 사례 연구를 통해 직관에 기반한 나의 관점을 구체화하고 싶다. 줄곧 해왔던, ‘이야기는 물질 자체다’라는 어떤 생각을 동력 삼아서. 여기서 ‘이야기’는 작가의 생각과 의도, 그리고 독자가 재해석하는 생각까지 포함한 의미이며 ‘물질'은 그림책의 판형이나 구조, 종이, 그림체와 인쇄 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이다. 작업할 때 이야기와 물질을 다루는 과정은 비선형적이지만, 사례 연구는 완성된 그림책이라는 물질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겠다. 그러니 사례 연구는 그림책의 이야기보다 물질성과 시각 표현성에 중점을 둔, ‘읽기’보다는 ‘보기’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정의하고, 분류하고 기준이나 입장을 세우게 되는 까닭은 개인적인 필요가 크게 작용했다. 그림책이라는 세계에서 나름대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작업 동기나 강의 방향을 명확히 하려면 그림책에서 내가 어떤 부분에 가장 매력을 느끼는지 구체화해야 했다. 관심사를 바탕으로 축조된, 이 장르에 관한 개인적인 입장을 정리하며 얻은 생각들은 작업과 강의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 작업을 할 땐 ‘그림책의 시각적 요소가 이야기와 일치하게 만들기’를 목표로 삼게 하고, 강의를 할 땐 수강생들의 질문에 관한 대답의 방향을 결정했다.
그림책이 완전히 독립된 예술 장르로 굳건히 서는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그림책을, 그림책 자체로 보고 생각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그리고 그렇게 그림책을 보는 사람들도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작은 바람을 품는다.
*그림책 만들기 트레이닝, 하세가와 슈헤이,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