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생일에 (구)남편 뿌린 썰
"엄마, 내일 집에 일찍 오면 안 돼~! 천천히 와아~"
생일 전날, 저녁 먹다 공주가 당부하고 왕자도 맞장구치길래 이유를 물었다.
아빠랑 같이 생일 축하 꾸밀 거거든~
잔뜩 들뜬 얼굴로 설명하는 아이들. 엄마 선물도 사야 하고, 축하 카드도 사야 해서, 집도 예쁘게 꾸며야 해서 아빠가 와서 같이 하기로 했단다. 케이크는 아빠가 산단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전개. 맙소사도 이런 맙소사가 없었다.
'그럼 내일 집에 애들 아빠가 오는 건가?'
'저녁 식사를 넷이서 같이 하려나?'
'케이크를 같이 먹나? 초도 불고?'
좋아하는 김밥을 기분 좋게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체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일이 지나가기 전까지 계속 체해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생일 "파티"를 위해 우리 가족이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폼폼도 붙이고 풍선도 달고 뭐 그런 축하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아이들의 그 마음이 정말 너무 기특했다. 서프라이즈를 위해 카드를 사고 생일 선물을 사야 하니 엄마 아닌 보호자가 필요했던 것도, 그래서 아빠에게 연락한 것도 정말 너무 이해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혼하고 첫 생일인데 (구)남편과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속상했다. 가뜩이나 매일매일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는 요즘이라서 더 그랬다.
대전 사는 친구가 오로지 내 생일 축하를 목적으로 성심당 빵을 사 들고 서울에 와 주기로 했는데, 그래서 참 기뻤는데, 식구들 만나 같이 밥도 먹기로 했는데, 다음 주에는 친구들도 만나기로 했는데, 이건 뭐 다 된 생일 기념에 (구)남편 뿌리기도 아니고, 나를 너무 삽시간에 슬프게 하지 않나. 물론 그도 아이들의 연락이 달갑진 않았을 수 있지만.
그렇게 꼬박 20시간을 긴장 속에서 보냈다. (잠을 잔 4시간은 뺐다.) 태권도 마치고 집에 와야 할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집에 오지 않았고, 친구와 전화하며 긴장을 달래던 나의 귀에 아이들 오는 소리가 들렸다. 초조해하며 기다리다 고개를 빼꼼했더니 공주와 왕자 뒤로 케이크와 종이가방을 손에 들고 들어오는 애들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와장창. 멘탈이 유리가 되려던 그 순간, 그 사람은 손에 든 것을 살포시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뒤돌아 나갔다. 나는 왜 그 모습이 반갑지 않고 또 슬펐을까. 그 사람을 마주할 때면 늘 마음 한편이 슬퍼진다. 그때마다 나는 그 슬픔이 후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를 위해 되뇌고 말이다.
그가 떠난 뒤 아이들은 30분 뒤에 오라며 나를 밖으로 내보냈다. 내가 걷고 또 걸으며 웅덩이 속 뿌옇게 부유하는 진흙처럼 마음을 어지럽히는 상념을 가라앉히는 동안 아이들은 제 할일을 했고, 데리러 나온 아이들을 따라 돌아간 나는 아이들이 분 풍선과, 내 나이랑 안 맞게 초를 꽂아둔 잘 단장된 케이크도 보았다. 여러모로,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커서 이렇게도 생일을 맞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