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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Mar 31. 2022

남편의 부트캠프 도전기

짧은 소설

서너 달 전부터 온라인을 통하여 코딩을 배우던 남편은 어느 날 <99일짜리 코딩 단기 속성반 모집>이라는 광고를 들고 와 아내의 승낙을 구했다. 부트캠프라고도 불리는 이 코딩 교육 과정은 고질적인 실업난과 IT인력 부족으로 인하여 여기저기에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었지고 단기간에 전문성을 갖춘 실무 인력을 배출한다는 목적에 이루기 위하여 부트캠프(신병훈련소)라는 이름만큼이나 과정이 빡세기로도 유명하였다. 



마흔 중반의 남편이 부트캠프에 참가하려는 목적은 취업이 아니었다. 그는 모처럼 취미 붙이기 시작한 코딩 실력을 이 속성 과정을 통해 빠르게 향상하고 싶었다. 중년의 나이에 코딩을 배운다는 것이 왠지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일 년이 넘게 즐기고 있는 자신의 비자발적 백수 생활에 무언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제껏 한 번도 남편의 비싼 취미 생활을 반대해 본 적이 없는 아내는 취미라 하기에는 상당히 고액의 수업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남편의 선택을 흔쾌히 승낙하여 주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간 아들의 자취방에 책상을 놓아주는 기분'으로 장시간 앉아도 꽁지뼈가 주저앉지 않을 푹신한 회전의자와 커다란 모니터를 놓을 수 있는 널찍한 책상을 남편에게 사주었다.



신청자 중 초고령으로 면접까지 통과한 남편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 문충으로 살아온 그에게 코딩이란 한 번도 다가가 보지 못한 분야였다. 그는 이 도전이 자신의 인생에 새롭고 멋진 변화들을 가져올 것이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과정이 시작되자 그는 마치 현업 프로그래머가 된 듯 생활했다. 부트캠프에서 권장하는 일주일에 100시간의 코딩은 애초에 무리라 생각했지만 최소한 정규시간인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최대한 코딩에 매달리려 노력했다. 



노화는 불가역적이다. 이를 세월 속에 느끼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인간은 종종 이런 안타까움을 스스로 자초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시작할 때의 대단한 의욕과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 불가역적인 이유로 초반부터 진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었을 때 그의 몸과 마음은 코너에 몰려 있었다. 운동 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몸무게가 수 킬로가 불었고 작년 가을 그를 괴롭혔던 대상포진이 다시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양강장제와 비타민을 한 아름 책상 앞에 쌓아 놓았지만 그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시작하고 떠벌린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과정에서는 매주 세 명이 새롭게 한 팀을 이루어 함께 과제를 수행했다. 남편은 매주 마주하는 새로운 팀원들과 어색하지 않게 지내려 노력했다. 그들은 그와 많게는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났지만 그럴수록 그는 오히려 새로운 세대와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다. 나이를 넘어 동료가 되는 것, 이것이 자신이 살아온 고리타분한 상하 질서에서 벗어난 새롭고 멋진 관계 설정이라 생각했다. 



그는 어린 팀원들이 나이 많은 자기를 어려워할까 봐 항상 먼저 농담을 건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과 친해졌다는 안도와 만족에 빠져 있다가도 종종 자신의 유머가 시대에 너무 뒤처진 것이 아닐지 고민하고, 저들의 웃음이 단지 윗사람에 대한 예의 치례가 아닐지를 의심했다. 실은 그가 신세대들과 어울려 자신이 구세대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그가 이미 구세대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꾸역꾸역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남편은 속성 프로그램을 이끄는 회사의 대표와 그의 진도를 관리하는 매니저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화상 채팅으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하면 될 것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면 불편하실 수 있을 까봐"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들과 세대차를 느낄까 불안해한 것은 남편 자신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수강생들의 이해 수준과 상관없이 빠르게 나아가는 진도와 수준에 맞지 않게 너무 어려운 과제 등에 대하여 점잖게 건의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가 개선을 바라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이미 이 피로한 일상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바람으로 가득하였고 이는 그의 노화처럼 불가역적이었다. 편지를 써 내려가던 그는 프로그램의 개선을 바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만두어야 할지 말지를 망설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고, 동시에 몸을 빼어내기 전에 자신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최고령 수강생의 편지에 운영진들은 긴 회의를 열었다. 어쩌면 공대생들은 문과생의 편지를 해석하는 데에만 한참의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매니저는 진도와 과제의 조절을 교육 과정 중에 반영하겠다는 답변이 들려주었지만 애초에 마음을 돌이킬 생각이 없었던 남편은 며칠 후 대표와 매니저에게 짧은 메시지로 자신의 중도하차를 통보하였다. 첫 번째 편지를 통해 그의 고충을, 혹은 한계를 충분히 인지하였을, 따라서 어쩌면 그의 포기를 다소 짐작하고 있었을 대표와 매니저는 만약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쳤다면 좋은 광고 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 이 시니어 수강생의 탈퇴를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에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이었다고 위로하며 예의 바르며 듣기 좋은 말들로 인사말을 전했다.



남편은 두 손 두 발을 들고 완전히 항복하였다. 넘치는 시간에 자랑하기 좋은 추억을 하나 만들겠다는 가벼운 바람으로 뛰어든 남편은 취업의 절박함과 미래를 향한 열정, 그리고 넘치는 체력을 지닌 젊은이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동네 헬스장에 다니는 아저씨와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의 노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교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래, 항복이다. 항복! 



남편의 비싼 취미를 별말 없이 승낙해 주었던 아내는 그의 항복 선언에도 별다른 토를 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나마 수업료를 절반 정도 환불받을 수 있고 몸이 상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현명한 그녀는 이런 때에 상처 입은 남편의 자존심을 위하여 어설프게 위로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모른 척하거나 얼른 잊어버린 척을 해 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부트캠프를 그만둔 날 바로 고가의 노트북을 한 대 주문했다. 이 또한 그의 비싼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단지 그 방법이 자신과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뛰어난 코딩 실력을 갖추겠다는 자신의 도전이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라 말하며 자신의 지지부진한 이해력을 오래된 연장 탓으로 돌렸다. 아내는 이번에도 행여 남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봐 '그래, 재미있게 하면 되지'라고 말해 주었다. 이제 그녀를 천사라 부르자.



남편은 어젯밤 코딩을 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새로 들여온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그는 그동안 그리도 괴롭게 배운 코딩으로 무언가 만들고자 하였지만 꿈속에서 조차 그동안 배운 코딩은 한 자도 떠오르지 않는다. 너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한 것이냐. 답답함과 당혹감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더는 못해먹겠다, 하며 악! 하고 소리를 한 번 지르려는 데눈이 번쩍 떠졌다. 꿈이구나, 내가 꿈을 꾸었구나. 이 쪽팔린 마음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남편의 마음을 아는지 그의 아내는 옆에서 곤히 자는 척을 한다. 


>> 20210410@Fuku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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