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4
마우이 마지막 날 우리는 아침부터 부산하게 남은 짐들을 챙겼다. 별로 산 것도 없는 데 출발할 때보다 짐이 많이 늘었다. 굿바이 314호.
랜트카를 돌려 주기 전에 기름을 넣으려 주요소로 들어갔다. 공항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주유를 할 수 있는 곳이기 인근 주유소는 모두 섬의 일반적인 기름값보다 한참 비쌌는 데 마우이 오일 컴파니(Maui Oil Company)란 주유소는 정상보다 낮은 요금을 받고 있었다. 셀프 주유를 하려는 데 카드 승인이 되지 않아 사무실에 들어가니 이 곳은 멤버쉽으로 운영하는 곳이란다.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주유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할로('고맙습니다'란 하와이 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손해만 안되는 일이라면 남들을 돕고 선의를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다.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할 정도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친절과 선의를 강요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물자가 풍부하니 여기 저기 공짜도 많다. 음료수 fountain을 주문하면 몇 번이고 다시 채워 마실 수 있고 캐챱이나 소스는 병 채로 내어 놓는다. 얼마전 피스모 베이(Pismo bay)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때에도 아이들의 오랜지 쥬스를 추가로 계산하려 하자 종업원이 자기 재량으로 공짜로 내어주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란 말처럼 그들이 미국이라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자라난 탓이 아닐까.
렌트카를 반납하고 마우이 공항에 들어섰다. 15번 게이트 2시50분 호놀룰루 발. 비행기는 30여분 만에 호놀룰루 오하후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우버를 불렀는 데 헨드폰 앱에 나온 기사의 이름이 Do Sun이다. 이 중년의 한국 아저씨는 하와이에 온 지 20년이 넘었단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느라 잠시 뉴욕에 살았던 이 아저씨는 페인트공으로 일을 하였었다는 데 호텔로 오는 길에 하와이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곳의 생활은 너무 심심해서 일 년에 두어번은 반드시 섬 밖으로 놀러 나갔다 와야한단다. 남들이 놀러 오는 하와이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답답하여 그 섬을 벗어났다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보니 인간은 반복에 익숙하지 않은 동물인 모양이다. 이 아저씨는 오랫만에 한국인을 만난 사람처럼 여러 이야기들을 쉴 세 없이 펼쳐 놓았다. 20만이 넘게 사는 한인사회는 뭉치지 못해 한인 회장이 두세명이나 된다는 이야기, 일본인 남편들을 한국인 여자들이 '죄다' 빼앗아 일본인 여자들은 한국인 여자들을 싫어한다는 이야기. 하와이가 예전에 비하면 습도도 높아지고 많이 더워졌다는 이야기 등등.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금새 호텔에 도착했다.
와이키키가 내려다 보이는 애스턴 와이키키(Aston Waikiki Circle) 1202호. 바다가 보이는 방이지만 옆과 맞은 편에 호텔들도 가까이 보인다. 모두 조금이라도 바다에 가까이 보이는 곳에 호텔을 지었기 때문이다.
와이키키 해변과 쉐라톤 보드웍(Sheraton boardwalk)을 지나 석양이 보이는 해변까지 걸었다. 기린을 닮은 구름, 길게 목을 뺀 요괴 구름, 날개를 펼친 피닉스 구름이 하늘에 펼쳐졌다. 우리는 늦은 저녁에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놀룰루의 상점가를 돌아 한참을 걸어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새벽 잠이 깨어 테라스로 나가 앉았다. 둥근 달이 바다 위로 밝게 떠있고 달빛은 멀리 수평선 부터 와이키키 해변까지 길게 이어져있다. 오늘 달은 유독 크고 노랗다. 어느 전설에 등장할 듯한 풍경이다. 끊임없이 부서지고는 파도 소리는 호텔 12층 테라스까지 들린다. 마치 지구의 심장 소리 같다. 시계의 초침 소리마냥 멈춤없이 지나는 시간을 알려 준다. 저 쉼없는 파도의 움직임은 이 별에 생명체가 생기기 한참 전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 때 지구에는 물과 바위만 있었겠지. 듣는 이도 없이 쉼 없이 파도가 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