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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예찬

샤이 짜장면 팬들을 위한 글

by 박종호

저녁 비행기로 중국으로 돌아가는 친구와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평소라면 나도 사람들의 의견이 모이기를 기다렸겠지만 오늘은 나의 위장이 망설임 없이 짜장면!이라고 외쳤기에 우리는 조계사 앞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우리가 그렇게 열망하던 짜장면은 어느새 이 시대에 피해야 할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나도 참 오랜만에 먹는 짜장면이다. 사실 점심시간에 중국집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짜장면이 떠올라 중국집으로 향한다. 막상 중국집에 들어오면 대부분이 메뉴판에 떡하니 적혀 있는 '짜장면'을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오늘도 한번 참아보자며 볶음밥을 시킨다. 그들은 다음에도 그럴 것이고 그다음에도 그럴 것이다. 다들 짜장면이 먹고 싶어 중국집으로 오는 데 빌어먹을 건강 채널 유튜버들 때문에 정작 먹고 싶은 것은 못 먹고 팔리는 것은 볶음밥과 짬뽕이다.


나는 위장의 명령을 받들어 중국집으로 향하면서도 그래도 짜장면은 좀 아니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다. 화교 가족이 하는 중국집에 들어섰을 때 새로로 쓰인 메뉴판의 첫 줄에 적힌 짜장면이 눈에 번쩍 들어왔다. 마음을 들켰지만 여전히 그래도 짜장면은 좀 아니지? 하며 메뉴를 읽어 가는 데, 그 순간 뱃속에서 짜장면! 하고 굵고 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오늘도 이 가게의 짜장면을 못 먹어보고 언제나처럼 양송이밥이나 짬뽕을 먹을 뻔했다. 짜장면을 선택한 나의 용기는 연쇄 반응을 일으켜 넷 중 세 명이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었을 짜장면을 시켰다.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 동북 지방에서 짜장면의 원조격으로 보이는 차가운 소스를 올린 차오짱면을 먹어본 적이 있지만 한국의 짜장면과는 전연 딴판이다. 나는 저녁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도 용기를 내어 짜장면을 시키기를 내심 바랬다 - 그랬었더라면 전원이 짜장면으로 통일되는, 30년 전에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을 보았을 텐데! - 하지만 친구는 짜장 소스와 짬뽕 국물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는 이유로 볶음밥을 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쉬이 저지르는, 본질을 흐리는 선택이다. 양시론은 양비론과 같다.


가운데 놓인 군만두까지 모두 비웠다. 모두는 매우 만족스러우며 동시에 조금 후회하는 얼굴이다. 오랜 시간 담배를 끊었던 이가 어느 술자리에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담배를 입에 덴, 그런 표정일까. 모두 하- 하고 한숨인지 한탄인지 트림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오랜 시간 담배를 즐겼던 사람들은 말한다. 담배란 참고 살지만 끊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그들이 끊지 못한다는 담배처럼 우리가 짜장면을 애증 하며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짜장면이 그만큼 우리에게 치명적이고 압도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삶이 지루하거나 고되다고 느껴진다면 가끔 스스로에게 일탈을 허하자. 그동안 보아 놓은 중국집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 조명이 가장 좋은 자리에 앉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짜장면 곱빼기를 시키자. 양파 한 점 남기지 말고 단무지 그릇을 연달아 비우며 검고 기름진 짜장을 남김없이 해치우자. 삶에 위로가 되는 치명적인 매력, 짜장면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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