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떡볶이
가회동길에 자리한 우리의 자랑 그리고 사랑
안국동 사거리에서 가회동 길을 따라 오르면 왼쪽으로 헌법재판소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계동을 지나 창덕궁으로 넘어가는 길이 나온다. 조금 더 가 왼쪽으로 보이는 길이 정독도서관을 지나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가회동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오른쪽에 재동 초등학교 담벼락이 이어지고 그 맞은편으로 가회동 주민센터가 보인다. 그 옆 작은 건물에 <명품떡볶이>가 있다.
명품떡볶이의 떡볶이는 명품이란 이름에 걸맞게 최고의 떡볶이이다. 먹어본 사람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떡볶이는 아주 작은 가게이다. 명품떡볶이가 자리한 단층의 좁은 건물은 앞에는 가회동 길, 뒤편에는 좁은 골목을 끼고 길게 이어져있다. 명품떡볶이 옆에는 철제수리점이 그 옆에는 문방구가 나란히 붙어 있다. 가게 안은 사장님 한 사람이 서서 요리를 할 만큼의 공간이 전부이다. 손님들은 가게 앞에 서서 떡볶이와 오뎅, 순대를 먹는다.
명품떡볶이는 면면을 보건 데 노포임이 분명하다. 사장님께 언제부터 이 가게를 하셨는지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간판 밑 전화번호가 017에서 010으로 바뀐 것을 기억한다. 무엇보다 가게의 긴 세월을 알게 해주는 것은 명품떡볶이의 메뉴판에 적힌 가격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천 원짜리 컵 떡볶이가 있다. 떡볶이가 1인분에 2500원, 떡볶이 순대 세트가 3000원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분식집의 가격에 절반에 못 미치는 가격. 서울 복판에 아직도 이런 가격을 가진 가게가 있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이 이곳은 북촌 한옥 마을을 오르는 길목이고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지나는 장소이다. 주변 가게들의 가격은 관광지 물가라며 천정부지로 솟는 데, 그 길목에 있는 명품의 가격은 아직도 10년 전 가격을 지키고 있다.
출출하고 졸음이 오는 오후면 나는 동네 형님과 이 가게에 들러 떡볶이와 순대를 먹고 크게 작게 동네를 한 바퀴 걸으며 수다를 떨다가 사무실로 돌아온다. 오래된 동네에는 이웃들만의 가격이란 것이 있다. 마음으로 더 얹혀주는 인심이다. 사장님은 언제나 어머니 같은 다정함으로 떡볶이와 순대를 산처럼 쌓아 주신다.
외국 사는 딸들도 방학이 되어 한국에 들어오면 둘이 손잡고 명품떡볶이에 인사를 간다. 사장님은 그동안 부쩍 컸다면서 떡볶이를 내어주시고 굳이 돈을 받지 않으신다. 나는 종종 출장길에 과자를 사서 전해 드리기도 하고 형님은 자기 회사 화장품을 주기적으로 선물드린다. 인심은 오가는 것이고 쌓이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와 형님은 주변의 물가와 너무 차이가 나버린 명품떡볶이 가격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재료값도 올랐을 텐데, 이러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결국 적자만 보고 계신 것이 아닐까. 결국 사장님께 조금 가격을 올리시는 것은 어떠시냐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가격 탄력성을 하회하는 지금의 가격은 10년 전 가격 그대로이다. 당장 두 배로 올려도 사람들은 기꺼이 이 맛있는 떡볶이에 돈을 지불할 것이다.
명품떡볶이의 사장님은 우리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아주 명쾌한 대답을 들려주셨다. 대답은 망설임 없고 단호했다. 맞은편 재동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이곳에 들러 간식을 먹는다, 주로 먹는 것이 천 원짜리 컵볶이. 가격을 올리면 아이들이 쉬이 사 먹지 못할 것 아닌가 그러니 가격을 올리면 안 된다는 말씀이셨다.
10년 전 가격, 주변의 절반에 못 미치는 메뉴판의 가격을 얼마나 올리면 적절할까를 계산하던 나는 머릿속 계산기를 멈추었다. 장사치다운 생각으로 감히 훈수를 두려 했던 우리는 차원을 넘어선 고수의 대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장님의 대답은 쉽게 말할 수 있는 작은 이유이었지만 감히 실천하기 어려운 큰 뜻이었다. 큰 마음이고 사랑이다. 천 원으로 컵볶이를 먹는 아이들의 즐거움이 이 분을 이곳에 서있게 하는구나. 나는 그제야 일 년에 단 이틀, 설날과 추석에만 쉬신다는 사장님의 말이 넌지시 이해가 갔다. 고수와 만나면 언제나 스스로의 하수를 깨친다.
얼마 전 형님과 오랜만에 명품떡볶이에 들렀다. 사장님은 올여름은 너무 더웠다며 웃으신다. 종일 불 앞에서 서있어 덥지만 발 밑에 선풍기가 있어 그래도 괜찮다고 하신다. 언제나처럼 떡볶이랑 순대를 산처럼 쌓아 주셨다. 언제나처럼 맛있다.
나는 명품떡볶이의 단골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런 가게가 지척에 있어 좋고, 그런 분들이 계시어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