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선사, 이태호 교수 강의
볕 좋은 일요일 오후, 금선사에서 열린 불교미술강연을 들었다. 명지대학교 이태호 교수는 인도에서 시작하여 구한말의 조선까지 불상의 유래와 변화를 수많은 자료 화면에 유쾌한 입담을 섞어가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노교수의 노련함은 압도적인 답사 경험과 통찰에서 나온다. 발품을 팔는 것은 어느 일에나 중요하다.
금선사는 조선 도성 한양의 주봉인 보현봉을 따라 내려와 비봉과 향로봉 아래 자리한다. 도심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금선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삼각산의 성스러운 기운을 느끼고 지었다고 전한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지녔다
강의는 인도의 불상 문화에서 출발한다. 인도의 초기 불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서양의 신을 담은 조각은 가슴을 정면으로 하고 몸을 틀어 옆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동양의 신상들은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똑바로 서 있다. 몸을 틀고 비스듬히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비너스의 모습은 동양의 신상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차이는 동서양인의 얼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즉 서양인의 오뚝하고 푹 들어간 눈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적 자세라는 것이다.
374년 불교가 고구려로 들어온 후 이 땅의 불상은 시대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발전한다. 미소년에 가까운 얼굴로 표현하는 초기의 간다라 양식에서 권위적이고 근엄한 얼굴로 (통일신라), 다시 왕권이 약해지고 호족이 득세를 하며 '못생겨도 좋다'는 자신감 있는 투박한 얼굴로.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통하여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다.
마애불, 마애석불이란 바위에 부처님의 모습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된 이후 지금까지 한국은 마애불의 전통이 이어졌다. 지금이야 절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지만 옛사람들은 부처님이 높은 곳에서 자신들이 사는 곳을 굽어보고 살펴주기를 바랐다. 자기가 사는 곳이 내려 보이는 커다란 바위에 부처님을 모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쉼 없이 자신들을 보살펴 주기를 기원했다. 단순하지만 참 직관적이고 강력한 생각이다. 부처가 내려보는 삶을 사는 이들은 안정감을 가지기도 하겠지만 반면 허투루 못된 짓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생활 속에 도덕적 기준을 설정하여 준다는 면에서 종교는 여전히 유용하다.
강의를 듣고 공양간에서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먹는 절밥이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