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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역사> 장은수 강연

정독도서관에서 도서관에 관한 강의를 듣다.

by 박종호

정독도서관에서 열린 <도서관의 역사> 책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앤드루 페트그리의 책을 장은수 작가가 번역하였다. 오랜 시간 편집자와 번역자로 일하고 민음사의 대표를 역임한 장은수 작가는 은퇴 후 책에 관한 책, 독서에 관한 책, 도서관에 관한 책을 출간하고 싶었다고 한다. 앞의 두 권은 직접 저술하고 나머지 도서관에 관한 책은 번역하였는 데 그 책이 이 <도서관의 역사>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의 도서관, 대형 건물의 형태를 지닌 도서관이 생겨난 것은 채 100년이 안된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책이란 매우 귀한 것이었다. 책을 읽는다라는 목적보다는 모으고 물려주며 자랑하는 목적이 더 컸다. 책이 귀하니 읽는 것 또한 매우 제한된 사람들에게 허용된 특권이었다.


인쇄술은 이러한 책의 재산적 가치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모으고 자랑하던 귀한 책들의 인쇄본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되어버리자 부호와 귀족들은 이 책들을 공공에 내어준다. 이렇게 최초로 영국의 공공 도서관이 생겨난다. 통 큰 기부이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나날이 떨어지는 소장품의 가치가 더 초라해지기 전에 과감하게 내어주어 명예를 더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책들이 쌓여 있던 그들의 수장고에는 이제 책 대신에 희귀하고 값 비싼 물건들이 채워졌다.


분더 카머(Wunderkammer)

호기심의 방, 진귀한 물건으로 가득한 방,
16~17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진귀한 물품을 모아둔 공간
a cabinet of curiosities or
a room displaying a collection of unusual items


시대가 흐르며 책은 많은 경쟁자들을 만났다. 라디오가 나왔을 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책의 존패를 걱정하였다. 이제는 디지털 기기, 실시간으로 정보가 쏟아지는 핸드폰이 독자들의 시간을 빼앗아 간다. 책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미 책의 변화는 시작되었고 밀리의 서재와 같이 디지털화된 책을 멤버십과 유료서비스로 대여하는 신개념의 도서관도 쉬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 자체가 활자화된 책을 접하고 대여하는 역할을 넘어 다양한 매체로 확대되기도 한다. 디지털 아카이브와 미디어 태그를 받아들이고 공간을 시민학교와 커뮤니티 센터로 활용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규정은 어디까지일까. 책이 외면받는 시대에 도서관은 어떤 역할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작가는 도서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며 그 존재의 지속을 옹호한다. 첫 째는 좋은 책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로서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잡다한 정보롤 인한 주의력 결핍의 시대에 믿을 수 있는 도우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근원적인 역할의 수행하기 위해 도서관은 더욱 강화된 큐레이션을 갖추어야 한다


두 번 째는 우연한 발견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세렌디피티의 공간이다. 서가를 흝으면서 한 번도 관심 둔 적인 없는 책과의 만남, 그리고 이 만남들이 만드는 기쁨과 창조성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도서관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통해 새로운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지적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세 번째로는 고요한 성찰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다. 책은 느린 학습기계이다. 검색어를 치면 주르륵 눈앞에 펼쳐지는 정보가 아닌, 시간을 들여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는 도구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서관은 합법적인 사찰이라고 작자는 말한다. 일정한 길이가 보장되지 않으면 전달하 수 없는 정보야말로 책의 가치라고 말한다.


노란색 하드커버로 예쁜 모양을 했지만 800쪽에 달하는 꽤나 두꺼운 책이다. 소위 벽돌책. 긴 내용을 통해서만이 전달이 가능한 지식을 전하는 것이 책의 역할이라고 한 말은 저자의 자기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도서관의 개념과 변화를 집어주고 향후의 과제를 던져준 멋진 강의였다.


나는 특히 우연한 발견으로서의 공간과 성찰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에 크게 공감한다. 주말이면 남산도서관 서고를 걸으며 서가에 꽂힌 책제목을 통하여 영감이 내게 찾아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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