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물건 #1 LION A-5 / 15cm

by 박종호

초등학교 3학년 여름. 문구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미국으로 가게된 친구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작별의 선물로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는 15cm 짜리 플라스틱 자를 하나씩을 선물하였다. 자를 받은 한 여자 아이는 이 자를 중,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쓰고 졸업 후 유학을 가서도 내내 가지고 다녔다. 얼마전까지 남편이 다이어리에 줄을 긋는 데 쓰이던 자는 며칠전 막 초등학교 들어간 큰 딸의 손에 넘겨 졌다. 우리 와이프의 자 이야기이다.


일본에 와서 유독 오래된 물건들에 눈이 간다. 오랫동안 쓰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은 장인(匠人)의 德이지만 쓰임이 다 할 때까지 곁에 두고 써 주는 것은 물건을 대하는 타당한 태도라 생각된다.


20년이 훌쩍 넘겨 아직 눈금 하나 지워지지 않은 현역 플라스틱자를 생각하며 혹시하며 다음 대물림을 상상해 보았다. 언젠가 내 손자가 "우리 할머니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말이지요, 같은 반 친구가..." 하며 이 자를 진품명품 같은 코너에 들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놈에게 이름이라도 지어주어야는 게 아닐까.


(LION이란 회사를 찾아보니 1792년 오사카에서 시작한 문구회사란다. 혹시 이 회사 사무실에선 200년이 넘은 골동품 자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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