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계획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by 박종호

오십에 막 들어서려는 내가 노년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남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계획이라면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다.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멀리 보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긴다 하지 않았던가. (『논어(論語)』 위정 편(爲政篇))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120세, 150세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의학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한다면 기대수명이 200세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럼 노후란 너무 먼 미래이거나 불가능한 계획일지도 모른다. 다만, 남은 삶이 70~150세라면 우리는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짧은 기간을 살던 시대에는 삶의 어느 지점을 지나면 그 흐름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다. 노년이 되고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 옛사람들이 산신령이나 신선이 되었되었다고 할 만한 시간이다. 삶을 두 번, 세 번을 살 시간에 무엇이 못되겠는가?


우리는 이번 생에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의 시대를 넘어,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고 싶은 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바라기만 하면 무엇이든 당장 이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명확하게 정했다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달팽이는 인내로 방주에 닿았다.”
"By perseverance the snail reached the ark.”
-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문득문득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내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 가치 있는 모습으로 실현한다면 어떤 모습이고 싶은 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내 마음에 꼭 드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그려본다.


모든 가능성이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단지 명확하게 방향을 잡고 꾸준히 걸어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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