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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05. 2024

XX가 끝나면 잡아먹습니다

사랑/연애/결혼 등 두사람의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성관계 얘기가 따른다.


나는 인간 성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쓰는게 다소 불편한 옛날방식의 인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생물학 썰을 풀어보려 한다. 


생태계엔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들이 존재한다.


황금무당거미 암거미는 수거미보다 몸집이 125배 더 크다. 심지어 독도 있다. 이런 암거미와 교미하려면 커다란 거미집을 들키지 않고 가야 한다. 거대한 암거미 몸집 위에 올라가 어렵게 교미를 시도한다. 모든게 끝난 후 남는 것은 죽음 뿐이다. 암거미는 불과 몇분 전 관계를 가졌던 수거미의 피를 뽑아 마신 다음, 바짝 쪼그라진 몸통을 이전에 자신을 거쳐갔던 다른 연인들의 시체 위에 던져버린다.


- 루시 쿡, <암컷들>



어떤 거미종은 암컷이 배가 다 부를 때까지 멀찍이 서서 대기하기도 한다. 검은과부거미의 수컷은 암컷의 서식지에 멀리 떨어져 암컷을 잘 관찰한다. 암컷이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가가는 식이다. 어떤 수컷들은 먹을 것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교미를 할 때 암거미가 배고플까봐 먹이를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수거미는 암거미에게 다가가면 자신이 죽을 운명인 걸 알면서도 교미를 하기 위해 접근한다. 어쩔땐 교미 자체도 실패하기도 한다. 암거미 기분이 언짢을 때 수거미가 알짱거리면 앞발로 쳐버려서 그대로 찌부시켜 죽여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수거미만큼 자신의 목숨을 바쳐 유전자를 번식하는 종도 없다.


암거미는 대체 왜 수거미를 먹을까? 첫째, 먹을 수 있어서다. 잡아먹을 능력이 충분하니까 영양분으로 섭취해 자신에게 피와 살이 되도록 잡아먹는 것이다. 둘째, 결국 자식을 위해서다. 암거미는 새끼가 부화하면 자기 살을 먹일 정도로 모성이 특출난 종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이롭기도 하다. 


모체포식 역시 거미의 일이다. 사막거미라고도 불리는 스테고디푸스 리네아투스의 부화한 새끼들은 어미의 몸에 의지해 음식과 영양분을 섭취한다. 처음에는 어미가 제 내장을 곤죽으로 만든 다음 토해내어 먹이지만, 마침내 새끼들은 주체할 수 없는 식욕으로 어미의 배에 직접 머리를 처박고 먹기 시작해 두세시간이면 빈 껍데기만 남긴다.


- 루시 쿡, <암컷들>



암컷이 잡아먹지 않더라도 교미 후에 곧바로 사망하는 수컷들도 있다. 마치 교미가 끝나고 암컷에게 정자를 주입하면 생명의 운을 다 했다는 듯 그대로 소멸해버린다. 검은낚시거미가 그렇다. 검은낚시거미는 교미가 끝나고 나면 몸이 뻣뻣해지면서 죽어버린다. 생물학자는 이 과정이 자연사가 아닌 '성교 후 자살'이라 분석한다.


호주 일반 가정집에서 발견되기로 유명한 붉은등줄과부거미도 수컷이 알아서 목숨을 끊는다고 알려졌다. 붉은등줄과부거미 수거미가 암거미에게 생식기를 찔러넣으면, 암거미는 수거미의 머리부터 먹어치운다. 그렇게 자기자신을 먹이로 바쳐가면서(?) 마지막까지 생식행위를 한다.


자칫 역겨울 수도 있는 거미의 생식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는 최근 방송된 <강철부대W>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때문이다. 출연자 중에 대한민국 육군 특수부대인 '독거미 부대' 출신이 있다. '독거미 부대'란 육군 훈련소를 거쳐 육군부사관학교의 훈련을 마친 여군 부사관 중 심사를 통과한 단 10여명의 엘리트만 선발하는, 여군 상위 1% 인재들로 구성한 조직이다. 독거미 출신 출연자의 눈빛이 인상깊어 왜 하필 독거미라는 명칭을 지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거미의 생식 특징을 찾아보게 됐다. 실로 '여성 킬러 집단'이라는 상징에 가장 걸맞는 부대 이름이다.

개인적으로 왜 이렇게 '강한 여성'에 꽂히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끌린다. 영화 드라마도 <킬 빌>의 우마 서먼처럼, 날카로운 칼을 들고 다 썰어버리는 그런 여자 캐릭터들이라면 다 좋다.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안젤리나 졸리 같은 킬러도 너무 매력적이고 아름답지 않은가.


미래 시대는 점점 더 여성의 주권이 강해지는 추세로 흘러갈 것이다. 성 평등을 넘어서 권력이 전복되는 시기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여성을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예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돈을 벌 수 있어서다. 


나는 궁금해진다. 만약 대다수 여성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거기다 홀로 출산과 육아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사회가 온다면 과연 남성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결코 결혼하지 않고 정자 기증을 받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유리의 사례도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Ah0Ys50Cq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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