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방구석 브런치

갬성 없어도 맛만 좋더라

by 평정

커피 한 잔이 아침밥이던 시절이 있었다. 카페인의 힘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밥심에 커피심을 더해 남은 오후를 버티고, 꺼져가는 에너지를 커피로 폭발시키며 야근을 견뎠다. 순수하게 맛과 향을 즐긴다기보단 살기 위한 원동력으로 때려 넣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마시며 커피 없이 못 살던 때가 있었는데, 웬걸. 퇴사하니 커피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정확히는 매일 찾던 카페인이 필요 없어지고 드문드문 맛있는 커피가 그리워진다. 그런 날에는 유유자적 나 홀로 브런치를 즐긴다.


밤마다 내일의 날씨를 챙겨 볼 필요가 없어진 대신 느긋하게 눈을 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창밖으로 한여름의 쨍쨍한 햇살과 새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울렁이는 게 절로 커피가 당긴다. 마음 같아선 콧바람도 쐴 겸 외출을 감행하고 싶지만 문 밖으로 한 발짝 떼는 동시에 온몸을 훅 덮치는 8월의 열기와 습기에 입맛이 사라지니, 이 무더위가 지날 때까진 에어컨 밑을 떠나지 않으리. 대신 집에서 편안하게 배달을 시킨다. 이왕이면 프랜차이즈보다 동네 맛집으로. 축복받는 커세권이라 커피와 함께 특색 있는 빵과 디저트를 갖춘 카페들이 상당하다. 덕분에 끌리는 대로 오늘의 메뉴를 고르고 주문하는 데에도 한참이 걸린다.


‘브런치’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하게 오전에 먹는 아침 겸 점심 식사이지만, 사회 통념상 자못 비주얼과 분위기가 한몫한다. 하지만 집에서 배달 온 메뉴들로 직접 차려 먹는 브런치는 밖에서 약속 잡고 만나 먹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나만 그럴 수도 있다) 처음엔 접시에 옮겨 담는 등 나 자신에게 성의를 보였던 것 같은데 배달을 거듭할수록 그 시도는 줄어들었다. (물론 나만 게을러서 그럴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충대충 편의와 효율만을 따진 멋없는 브런치가 펼쳐졌다. 그래도 맛있게 커피를 호로록 마시다 우연히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일견 내가 봐도 진짜 ‘백수’ 같아 보여 찰나의 현타가 스쳤다.


음...... 아무렴 어떠랴, 이것이 현생인데. SNS에 전시할 것도 아니고, 눈치 볼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맛이 덜한 것도 아니고. 매미 소리를 BGM 삼아 아이스 라떼로 갈증과 더위를 날리고, 부드럽고 쫄깃한 빵들로 배를 채우고 나면 여기가 별 다섯 개 맛집이지! 누군가에겐 보잘것없어 보여도 다 그만의 낭만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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